호남선 열차에서 생긴 일
오래전 일입니다. 40여 년 전이었으니까
그 때는 서대전역에서 목포로 가는 비들기호 완행열차가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간이역 까지 빠짐없이 들러서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가는 그 느려터진 열차에도
늘 자리가 모자라 여기저기 통로에 서있는 사람들이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남의 좌석 팔걸이에 엉덩이를 디밀고 좀 앉아서 가도 좌석에 앉은 사람이 그리 얼굴 붉히지 않았습니다.
좌석표가 없으니 앉아 있다가도 어른들이 오면 자리를 비켜주고
앉아서 가는 게 미안하면 때로는 일어서서 잠깐 다리쉼이라도 하라고 자리를 내주는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반갑지 않은 것은 그 비좁은 통로를 뻔질나게 비집고 다니며
“ 땅콩이요, 땅콩, 금방 볶아온 심심풀이 땅콩이 왔어요. 오징어요. 땅콩. 울릉도 오징어, 심심풀이 땅콩......”
그렇게 숨도 안 쉬고 혼자 중얼거리는 땅콩 장수가 나타나면
통로에 모처럼 자리를 잡고 다리쉼을 하는 사람들이 검열 받는 내무반 병사들처럼
모두 부석부석 일어나곤 했습니다.
땅콩 장수는 국방색 야전잠바에 검은 물을 들여 입은 아직은 이마가 새파란 젊은이였습니다.
그 호남선 열차에 탄 사람들은 유달리 얼굴색이 짙고, 목소리가 컬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앞뒤에 앉은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제 할 이야기 다하고,
때로는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때로는 욕지거리를 해대며 삿대질까지 나와서
가슴이 조마조마 하지만 역 두어 개 지나다 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예의 호남선 완행열차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차창에 비치는 황산벌의 가슴이 툭 터지도록 시원한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며,
작은 간이역 앞에 붉게 핀 맨드라미며 국화에 눈이 팔리기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날은 열차의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어디쯤에서 탔는지 모르지만
한 쪽에는 스님 한 분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머리에 포마드가 뚝뚝 흐를 듯이 듬뿍 바른 신사 한분이
낡은 가죽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고구마로 유명한 함열 쯤 지날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 신사분이 스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파수대”와 “깨어라”라는 잡지를 꺼내들고 스님에게 전도를 할 양이었습니다.
“스님, 제가 성경에 나오는 진리 말씀을 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잠깐만 시간 좀 내 주시겠습니까?”
졸다가 깬 스님이 무슨 일인가하고 눈을 떴다가 금방 사태를 알아차리고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오른손을 살짝 들어 흔들 뿐이었습니다. 관심 없다는 표시였지요.
그러나 이 신사 분은 그냥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습니다.
“스님, 이건 스님의 생사가 달린 중대한 일입니다. 꼭 좀 들으셔야 합니다. 여기 신약성경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말세의 징조가 나옵니다. 잠깐만 좀....”
다시 눈을 뜬 스님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있었습니다.
“말세지요. 그러니 보살님도 성불하세요.”
신사 분은 숨을 한번 깊이 들이 쉬더니 더 단호한 태도로 달려들었습니다.
“ 스님, 지금 스님들이 돌을 깎고 구리를 녹여 만든 부처를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어서 속히 돌아서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의 심판이 이미 이르렀다고 성경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매우 야릇한 웃음을 웃으며 이렇게 내 뱉는 것이었습니다.
“보살님, 부처님 말씀에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몸에 상처를 내고,
삼보(三寶, 부처, 불경. 승려를 일컬음)를 훼방하고, 경전을 존중치 않으면,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이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성불하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
그 신사분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세상에 지옥이 어디 있어요!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게 없어요.
왜 없느냐? 잠깐만 제 설명을 들어보라니까요. 이런 답답한.... ”
그 순간이었습니다.
스님의 굵은 눈썹이 움찔하더니 그의 오른 손 장삼자락을 휘날리며
아직도 뭐라고 입을 씰룩거리는 신사의 오른쪽 뺨을 보기 좋게 후려갈겼습니다.
웅성웅성하던 열차안의 승객들이 일순간 숨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습니다.
잠깐 동안 손자국 난 뺨을 어루만지며 숨을 고르던 신사가 드디어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중이 사람을 쳐!
자, 아예 이 왼쪽 뺨도 때리시지,
성경 말씀에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도 내놓아라. 그랬거든...”
신사가 구부정한 자세로 왼쪽 뺨을 스님의 가슴에 들이밀고 대들자
스님도 이걸 정말 어떻게 해야 되나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찬라였습니다.
바로 두어 자리 건너 창가에 앉아 있던 갓을 쓴 노인이 벌떡 일어서서 담뱃대를 휘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온 열차 안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일갈하는 것이었습니다.
“ 옛끼, 이 숭헌 인사들 같으니라고. 이 열차에 자기들만 타고 있는 것이여 시방.
동방예의지국에서 맹자님 말씀도 몰라.
수오지심은 의지단이요(羞惡之心 義之端也,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이 의의 단초가 된다),
사양지심은 예지단이라 (辭讓之心 禮之端也,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초가 된다) 했거늘
귀 싸대기 맞을 짓을 했으면 한 대나 맞고 다소곳이 앉아 반성은 못할망정
이쪽도 때리라고 대들어, 예엣끼 이 숭헌..........”
기차 안은 그야말로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할아버지의 수염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노기가 서려있었습니다.
숨을 죽이고 있던 기차 안 어디선가 잠시 후에 비닐봉지 터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푸핫, 푸푸푸 ....”
그리고 온 기차 안은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옳소, 옳소.”
기차 안에 깔깔거리는 소리와 박수소리와 뒤숭숭한 환호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예의 그 땅콩 장수가 나타났습니다.
땅콩 장수는 걸터앉은 사람들에게 파도타기를 시키며 좁은 통로를 헤집고 있었습니다.
뭔가 뒤숭숭한 분위기를 진정시키느라고 그랬는지
단발 카빈 총소리 모양으로 열차 안이 쩡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습니다.
“ 따앙 콩!!”
열차 안은 다시 왁자지껄하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 되었습니다.
기차는 사거리역(지금은 백양사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음)에서 그 스님을 내려주고,
장성에서 그 신사분을 내려주고 임원역을 지나 느릿느릿 있는 대로 게으름을 피우며
송정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추억의 호남선 완행열차를 마지막으로 타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좋은 누리에 들렀다가 쓸데 없는 이야기 하나 남기고 갑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긴 하나 약간의 양념을 쳤습니다.
누릿꾼 모두 평안하시기를 ..... )
성경이 말하는 오른뺨 왼뺨이
그렇게도 해석될수 있다는건 오늘 처음 깨달아봅니다..
새로운 깨달음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