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7월 16일 엘렌 화잇이 세상을 떠났다.
그 해 2월 13일 안식일, 서재로 가다가 넘어져서
왼쪽 고관절이 골절된 이후로는 걷지 못했다.
요즘 같았으면 바로 수술을 했을테지만
아마 그당시에는 그런 수술이 없었던 것 같다.
낙상하기 전까지 화잇은
건강도 비교적 양호했고
정신은 맑았다.
1905년 워싱톤 DC 에서 열린 대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를 떠나 5개월간 대륙을 종횡으로 누비며
캘리포니아에서 메인주까지
알라바마에서 위스칸신까지
노중에서 수십번의 강연과 설교를 했다.
'이 여행에서 살아 돌아올지 모르지만' 주께서 은혜를 주시면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전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교회의 일을 위해 여러 권면을 했다.
특히 강조해서 말한 것은 도시선교였다.
대도시들에 '경고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늙은 여선지자는 교회의 각성과 비전을 촉구했다.
1909년 대총회는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서신들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관절 골절 사고가 자신의 마지막 병상임을 안 엘렌 화잇은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지만 sooner the better' 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나 후회같은 것은 없었다.
병상에서도
교인 청년들이 읽을 만한 책들의 목록을 추렸고
요 밑에 쓴 대로
로마린다 의과대학의 실습병원으로 로스엔젤레스에 건립되던 병원
(나중에 화잇 메모리얼로 명명됨)
을 걱정했다.
사망 전 며칠 동안은 의식이 없었다.
1915년 7월 16일 오후 3:40
문자 그대로 자는 듯 잠들었다.
7월 18일 엠스헤이븐에서 장례식이 있었고
배틀크릭까지 운구되어
7월 24일 안식일에 교회장이 치뤄지고 남편 곁에 묻힌다.
(요전에 누가 안식일에 결혼식을 해도 되느냐고 마구 항의했는데...
장례식은 해도 되는데 결혼식은 안되나? 모를 일이다)
(이것이 공식 기록이다.
장례식에서 사람들도 보았던 내용이다.
그러나 엘렌 화잇의 시신은
그날 매장되지 않고
다시 거두어져 한달이 넘도록 장의사에 보관되어 있다가
8월 26일에 다시 매장된다.
그 이상한 사연은
그동안 여기 소개된
"Ellen Harmon White: An American Prophet" 의 Death and Burial 이라는 chapter 에 자세히 나온다.
나도 이번에 처음 읽은 내용이다.
임박한 재림에 대한 소망
선지자는 특별부활할 것이라는 기대
부모에 대한 회한과 사랑에 의한 기괴한 행동...
이런 것들이 아우러진 에피소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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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 이후 100년이 지난 오늘
안식일교단은 별 부끄러움도 없이
아직도 여자는 완전한 의미의 목사가 될 수 없다고 결의했다.
여선지자에 의해 시작되고 꼴이 갖추어지고 발전된 교회로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화잇이 무덤에서 잠시 특별부활하셔서
이 교회를 일갈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