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뉴스타파의 최승호PD입니다.
작년에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으로 아고라에 글을 몇 번 썼는데, 올해 다시 찾았습니다.
2번째 간첩조작사건이 생긴 것 같아서입니다.
국정원은 이시은(가명)이라는 여간첩이 북한 보위사령부가 준 기억 제거 패치를 갖고 들어와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의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통과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합동신문센터에서는 많은 탈북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시은씨의 경우 진실반응(간첩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왔고, 이후 국정원 추궁에 자백했다는 겁니다. 물론 패치들은 이미 변기에 버렸고, 증거는 없습니다. 오직 이시은씨의 자백 뿐이죠.
이 사건은 1심과 2심에서 일사천리로 유죄판결이 났고 지금은 대법원에 가 있습니다.
2심 선고 직후 재판정에서 여간첩이 울었다는 기사를 보고 민변 장경욱 변호사가 이씨를 찾아갔고, 이씨는 "그동안 허위자백을 해왔다. 국정원 여조사관이 자백을 번복하면 7년 형을 받는다고 말해 재판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 뒤 제가 취재를 시작했는데, 국정원에서 만들어진 이시은씨의 자백내용 모든 곳에서 문제가 발견됐습니다. 무엇보다 이시은씨가 '기억제거 패치'를 브래지어에 넣어서 한국까지 들어왔다는데, 이씨가 보관해온 브래지어를 보니 패치를 넣을 공간이 없었습니다. 이씨는 '국정원 여자 조사관도 브래지어를 확인했는데, 그 뒤 버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증거를 없애려고 했다는 거죠. 여조사관은 그 뒤 브래지어를 여러 개 사 주면서 버리라는 압박을 했다네요. 이시은씨와 함께 탈북한 동거남 김영하(가명)씨는 이씨가 공작원이 된 적도 없고, 탈북 직전 지령을 받았다는데, 지령을 받을 만한 시간도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원이 1, 2심에서 이 황당한 사건을 그대로 유죄판결했다는 것입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국선)들이 기억제거 반창고를 믿은 것이죠. 피고인이 자백했으니 다른 의문은 무시해버린 것입니다. 저는 취재하면서 대한민국 사법 현실이 이 지경이구나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무서운 것은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뒤집힐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법률심이라 사실 심리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1, 2심에서 전혀 사실관계의 문제점이 다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법은 관행상 그냥 기각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다네요.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뉴스타파가 취재하면서 신경약리학 전공 교수님에게 물어보니 '기억 제거 패치'라는 건 아직 개발된 적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앞으로도 개발될 가능성이 적답니다. 기억을 되살리는 데 연구가 집중되지 기억을 없애는 쪽은 별로 연구가 없어서 그렇답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탈북자 출신 간첩이 21명이나 배출됐습니다. 지금까지 합동신문센터를 거친 탈북자들 중 4명이 조작당했다고 고백했는데요. 사실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간첩 판결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시은씨와 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국정원 수사단계에서 바로 검찰로 넘어가고, 재판으로 가는데, 검사들이야 국정원 수사관들과 똑 같은 사람들이고요. 국선변호인들은 탄원서 한 장 써내라고 하고, 형량이나 줄여달라고 한 마디 하는 게 변론의 전부입니다. 그러면 판사는 징역 3년에서 5년을 때려버리는 것이죠. 1심 판결이 이렇게 나면 아예 항소포기를 하는 간첩혐의자들도 많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취재해보니 이시은씨에게도 국정원 조사관이 '항소하면 형을 더 받는다'고 했다는군요.
그렇게 형이 확정되면 아는 사람 없는 이역 땅에서 면회 오는 사람 하나 없는 징역생활을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다 한 번 찾아와 영치금 10만원 넣어주고 가는 국정원 직원이 그들이 이 세상에 가진 유일한 끈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청주여자교도소에는 여간첩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에는 국정원의 조작을 폭로했지만 결국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유죄판결 받은 사람도 있고, 아예 항소도 포기하고 바로 교도소로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약 대법원이 지금까지의 관행대로 판결한다면 이시은씨도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뉴스타파 , '거짓말탐지기를 속인 여자'를 한 번 봐주십시오.
http://campaign.agora.media.daum.net/newstapa#clipid=59983513
보신 뒤 이시은씨의 호소가 사실이라고 생각되시면 그 이야기를 많이 알려주십시오. 대법관 분들이 한 번 봐주시면 정말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