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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판매 실적 없는 군소 제약사
박 대통령 순방 맞춰 의료계약
“가장 큰 회사” 정부 설명과 달라
보령제약·종근당 등 국내 제약사
정부 소개 의존해 실태파악 못해
복지부 “검증은 기업 몫” 발 빼기

‘2000억원대 사우디 의료 수출’과 관련해 정부가 국내 제약업체한테 소개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제약사는 의약품 생산·판매 실적이 전혀 없는 신생·군소 제약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부는 이 제약사의 투자 여력과 신뢰도, 영업력에 대한 기초적인 검증조차 하지 않고 국내 제약업체의 의약품 수출 계약 파트너로 주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약 분야의 사우디 진출 소식을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일정에 끼워 맞추려고 현지 업체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마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한겨레>의 취재 결과, 국내 제약업체 4곳과 ‘2000억원대’(정부 주장) 의약품 수출 및 제약공장 건설 계약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사우디 에스피시(SPC·Sudair Pharmaceutical Company)사는 설립된 지 막 1년을 넘긴(2013년 말 설립) 신생 제약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0억원대 사우디 의료수출’에 관한 정부 발표가 나온 지난 4일, 보건복지부 해외의료진출지원과 관계자가 “(에스피시는) 현지 제약사인데, 그쪽에서 가장 큰 회사”라고 설명한 것과 달리 전세계 기업정보망인 콤파스(Kompass)나 후버스(Hoovers)에도 이 업체명은 등록되지 않았다. 물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중동 부문 고객업체 명단에도 없다.

사우디 안에서 의약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한 실적도 전혀 없다. 그밖에 에스피시사의 주요 주주 구성이나 인력 규모, 구체적인 재정 현황 등도 전혀 알려진 게 없다. ‘2000억원대’ 의약품 수출 계약의 당사자인 국내 4개 업체도 이 업체를 제대로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에스피시사와 항암제 등 4개 품목에 관한 수출 양해각서를 맺었다는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지난 5일 “에스피시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 개념으로, 쉽게 말하면 일종의 프로젝트 이름”이라고 말한 뒤 뒤늦게 “정부 쪽에 다시 확인해보니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회사”라고 알려 왔다. 또 제약기업 4곳 가운데 유일하게 이 업체와 실제 계약을 맺은 비씨월드제약은 금융감독원에 이 업체와 맺은 계약 내용을 공시하며 ‘SPC’ 옆에 괄호로 ‘Al Osool Medical Co.’라며 다른 업체의 이름을 표기했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이 업체는 에스피시의 관계사로 같은 회사가 아니다. 또다른 제약업체 관계자는 “사우디 국영 제약업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피시는 민간기업이다.

에스피시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지만, 이 업체와 계약을 맺거나 양해각서를 주고받은 국내 제약업체는 대체로 ‘정부가 소개한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태도다. 김민권 종근당 부장은 “정부가 중개한 것이라 사업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형중 중외제약 홍보부장도 이 업체의 신뢰도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제약업체의 이런 ‘기대’와 달리, 정부가 에스피시사의 투자 여력과 영업력 등에 대한 검증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 업체가 ‘2000억원대’ 제약 비즈니스를 맡을 능력이 있는지 정부도, 국내 제약업체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해외의료진출지원과장은 9일 “에스피시의 자본 규모나 영업력, 신뢰도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검증이 이뤄졌느냐”는 <한겨레>의 물음에 “국내 제약업체를 그쪽과 브리지(연결)해준 것은 맞지만, 정부 차원에서 검증해본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정 과장은 “해당 업체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은 계약 당사자인 개별 제약업체가 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한겨레신문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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