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891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마음 산책] 발밑의 행복

[일러스트=강일구]

혜 민
스님
3월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미국 동부는 아직 겨울바람이 매섭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 하고 반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똑같은 겨울 옷차림이다. 이번 주에 문득 내가 회색 스웨터 한 벌로 지난 몇 주간을 지내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니, 이럴 수가.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오는 교수를 보고 학생들은 속으로 뭐라고 했을까. 요 며칠 사이에는 너무 추워서 면도도 건너뛰고 삭발도 자주 하지 못했는데. 덥수룩한 내 모습에 학생들은 물론 동료 교수들 보기조차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추위가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토요일 아침, 좌복(참선용 방석)에 올라 정진하기 전에 방 청소를 시작했다. 아무리 매서운 날씨라도 아침마다 문을 열고 환기를 하셨다는 서옹 스님 말씀이 생각났다. 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로 환기를 한 후, 버릴 것은 버리고 치울 것은 치우고 나니 뿌듯한 마음과 함께 뭔가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았다. 내친김에 옷장을 열어 대대적인 정리를 시작했다. 짝을 잃어버린 양말과 선물로 받은 목도리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잘 입지 않는 옷들을 정리해서 기부할 수 있는 옷들과 너무 상해 버려야만 하는 옷들로 나누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옷의 가짓수는 3분의 2로 줄었는데 입을 수 있는 옷들은 오히려 더 많아진 것이다. 결국 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옷이 너무 많아서 입을 옷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뿐이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최근에 또 있었다. 내가 강의를 하고 있는 대학과 은사 스님이 계신 절은 운전해서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주말에 그 길을 오가면서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음악 감상을 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탓에 클래식, 재즈, 가요, 팝송, 영화음악 등 다양하게 듣는데 얼마 전부터 더 이상 들을 만한 음악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스마트폰 안에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음악을 시작으로 최근 앨범까지 수두룩하게 가득 담겨 있는데도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최근에 구입한 음악들만 주로 듣는다는 사실에 있었다. 최근 음악이 좀 시들해지면 지금 들을 만한 음악이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한번은 음악을 전공하는 동료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교수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 스마트폰의 무작위 재생 기능을 활용해 보라고 권했다. 무작위 재생 기능을 활용하니 스마트폰이 알아서 무작위로 이 음악 저 음악을 재생해서 하나씩 틀어주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김광석이나 엔니오 모리코네, 조지 마이클과 같은 주옥같은 명곡들이 내 귓가를 다시 노크했다. 가만히 보니 들을 만한 음악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만을 자꾸 찾는 버릇 때문에 이미 가지고 있는 좋은 음악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최근 뉴욕에서 관람한 뮤지컬 ‘피핀(Pippin)’은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난 피핀은 삶에서 위대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 전쟁 영웅이 되기도 하고,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 혁명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허망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은 항상 곁을 지켜주었던 여자친구와 함께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것임을 깨닫는다. 오랫동안 애타게 찾아 헤매던 것이 막상 찾고 보니 다름 아닌 항상 자기 옆에 존재했던 것이었다.

 사실 구도자들이 추구하는 깨달음도 피핀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깨달음이 뭔가 특별한 경험이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수행을 하면 할수록 평상심이 곧 도(道)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달음은 뭔가 없었던 것을 새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본성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는 순간, 많은 성인들은 ‘눈앞에 항상 두고도 못 봤다니’ 하며 껄껄껄 웃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현재 삶과는 다른 뭔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성취하는 것으로 여기는 수가 많다. 그래서 지금이 늘 불만족스럽고,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나아 보이는 것을 찾고 싶어서 마음이 바쁘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소중한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얼마 전 트위터에 혜광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행복한 삶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새기니 눈 내리는 3월의 아침도 나름 참 아름답다.

혜민 스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29 김원일 2014.11.30 11980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6 38309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6 55214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7118
8735 운영자에게 질문 4 fallbaram 2014.02.24 1021
8734 "안식후 첫날"(막16:2,눅24:1,요20:1) "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마28:1) 번역상 오류에 대해 46 김운혁 2014.02.25 1361
8733 교합 (articulation)-무엇을 먹느냐 VS 어떻게 먹느냐 1 fallbaram 2014.02.26 1037
8732 궁금한 내용 3 E 2014.02.26 1057
8731 우연이 지난 신문을 읽다가. What shall we do with 'NEW START'. 2 tears 2014.02.26 1232
8730 박근혜에게 더 이상 기대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김원일 2014.02.26 1315
8729 편파적인, 너무나 편파적인? 웃기는 주관의 객관 6 김원일 2014.02.26 1104
8728 한 건축가의 죽음 5 southerncross 2014.02.27 1257
8727 "추천하고 싶은 남" 님의 요청에 따라 기술담당자 2014.02.27 1311
8726 안식교를 떠난지 2달째 6 떠난이 2014.02.27 1337
8725 시할머니 2 바다 2014.02.27 1001
8724 [평화의 연찬 제103회 : 2014년 3월 1일(토)] ‘해외 NGO들의 북한에서 활동과 한국의 북한 구호 현주소’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4.02.28 1155
8723 김운혁님, .자존심을 버리시고 이제는 생각을 고치시지요. 20 file 왈수 2014.02.28 1158
8722 Il Silenzio 4 hm, 2014.02.28 1066
8721 색동옷(12)-전사의 노래 2 열두지파 2014.03.01 1251
8720 리허설과 공연: 설교 같은 설교 6 김원일 2014.03.01 1040
8719 박정희가 경제를 살렸다에 관한 진중권 토론 4 신생 2014.03.01 1119
8718 1979년 12월 8일 비공개 재판 김재규 진술 신생 2014.03.01 1408
8717 유월절 날의 요일 문제 13 왈수 2014.03.01 1346
8716 재림 성도 여러분 (필독) 3 김운혁 2014.03.02 1181
8715 재미있는 비교 허 와 실 2014.03.02 1284
8714 곽 건용 목사님께 7 fallbaram 2014.03.03 1318
8713 엄마의눈물 file 2014.03.03 1168
8712 재림교회란 무엇인가? 1 작은동산 2014.03.03 1004
8711 새누리 김진태 “정미홍 출마에 겁먹어 합당하는 것” 게다 2014.03.03 1229
8710 믿음은 깨닫는것이다. 18 김운혁 2014.03.04 1088
8709 일단 5.00$ 기부금 내놓고 "썰?"풀겠읍니다 11 fm 2014.03.04 1529
8708 유월절이 어느 날인지 찾기를 포기하며..... 4 무실 2014.03.05 1069
8707 [평화의 연찬 제104회 : 2014년 3월 8일(토)] 평화의 연찬 104회, 2년(2012년 3월 3일~2014년 3월 8일) 그리고 3년을 향하여 (사)평화교류협의회 2014.03.05 906
8706 아, 우리는 지금 모두 “불고지 죄“에 빠져 있다! 2 아기자기 2014.03.05 1439
8705 진리에 대한 믿을만한 증거들 5 김운혁 2014.03.06 992
8704 당신이 바로 마귀야! 3 악마의 트릴 2014.03.06 1068
8703 예수가 한 소리 또 하는 논객 16 김원일 2014.03.06 1429
8702 우리는 모두 불고지 죄에 빠져있다 " 를 읽고 3 등대지기 2014.03.06 1652
8701 kasda.com도 미쳤고 대한민국도 미쳤다 1 악마의 트릴 2014.03.06 1499
» [마음 산책]발밑의 행복 교회청년 2014.03.06 891
8699 유월절 날의 문제 2 왈수 2014.03.08 1194
8698 싸바톤과 수난 주간 속의 안식일의 실체 2 file 김운혁 2014.03.08 1329
8697 초실절의 문제 1 왈수 2014.03.09 1303
8696 김 운혁님께 3 무실 2014.03.09 1047
8695 윤달 주기표 file 김운혁 2014.03.09 1683
8694 전원일기의 순박한 청년이 왜 이렇게 망가졌나? 검단 2014.03.09 1331
8693 개혁자 엘리야(뉴스앤조이 이영재 목사) 1 빈민 2014.03.09 1216
8692 골빈당 당원 김원일이 골찬당 당원 "통일대박"님에게: 박근혜 언어의 궁핍, 그 본질 김원일 2014.03.09 1008
8691 인생은 리허설이 아니다! 눅 10장 3 fallbaram 2014.03.10 1125
8690 김 운혁님께(2) 1 무실 2014.03.10 1056
8689 이런 교회가 부럽다. 라오디 2014.03.10 1039
8688 다니엘 9장에 대하여 3 김운혁 2014.03.10 947
8687 돈은 누가 내냐? 1 박양 2014.03.10 1469
8686 안식교, 또한명의 인간을 탈인간 해 버렸다! 2 악마의 트릴 2014.03.10 1083
8685 1700년의 역사의 폐허속에 묻혀 버린 "하나님의 희생으로 세워진 안식일" 에 대하여 6 김운혁 2014.03.11 959
8684 레위기 23:11에 대해서 (동영상) 김운혁 2014.03.11 1081
8683 Youtube.com에서 동영상 가져오는 법 우리동네 2014.03.11 1048
8682 큰 안식일 회복운동에 대한 호소 : 교회 지도자들께(동영상) 11 김운혁 2014.03.11 1071
8681 새빛에 대한 요약 정리 2 김운혁 2014.03.11 1014
8680 김운혁님께 23 유리바다 2014.03.11 1069
8679 제 책 <하느님 몸 보기 만지기 느끼기>가 출판됐습니다. 6 곽건용 2014.03.11 1160
8678 빗나간 애국 애족 교육. 백근철 2014.03.11 958
8677 허무 개그. 1 박양 2014.03.11 1820
8676 한국 일보 2월 광고 내용에 대한 설명 김운혁 2014.03.11 1527
8675 김운혁님께2 1 유리바다 2014.03.11 1131
8674 (사)평화교류협의회 제104회 평화의 연찬 최창규 상생공동대표의 연찬을 듣고... 한 밀알 2014.03.12 903
8673 질문과 답변들입니다. 7 왈수 2014.03.12 1031
8672 [출애굽 시내산의 비밀/김승학 박사의 성지탐사]와 ['출애굽'부터 '시내에서 가데스까지' /부조와 선지자]를 비교 연구합시다. 1 민초사랑 2014.03.12 1473
8671 안식일교회의 종말 3 김균 2014.03.13 1373
8670 치과 의사의 종류 3 fallbaram 2014.03.13 1577
8669 안식교회의 종말(2,000년에 예수 재림한다 약 팔던 신계훈목사의 변명) 1 약장수 2014.03.13 1404
8668 안식교회의 종말(2,000년에 예수 재림한다 약 팔던 김기곤목사의 변명) 7 약장수 2014.03.13 1427
8667 사람 죽이는 성경책을 이제부터 그만 읽기로 작정하며… 3 무실 2014.03.13 1448
8666 재림 성도 여러분 11 김운혁 2014.03.13 1043
Board Pagination Prev 1 ...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 225 Next
/ 225

Copyright @ 2010 - 2016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