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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발밑의 행복

[일러스트=강일구]

혜 민
스님
3월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미국 동부는 아직 겨울바람이 매섭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 하고 반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똑같은 겨울 옷차림이다. 이번 주에 문득 내가 회색 스웨터 한 벌로 지난 몇 주간을 지내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니, 이럴 수가.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오는 교수를 보고 학생들은 속으로 뭐라고 했을까. 요 며칠 사이에는 너무 추워서 면도도 건너뛰고 삭발도 자주 하지 못했는데. 덥수룩한 내 모습에 학생들은 물론 동료 교수들 보기조차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추위가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토요일 아침, 좌복(참선용 방석)에 올라 정진하기 전에 방 청소를 시작했다. 아무리 매서운 날씨라도 아침마다 문을 열고 환기를 하셨다는 서옹 스님 말씀이 생각났다. 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로 환기를 한 후, 버릴 것은 버리고 치울 것은 치우고 나니 뿌듯한 마음과 함께 뭔가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았다. 내친김에 옷장을 열어 대대적인 정리를 시작했다. 짝을 잃어버린 양말과 선물로 받은 목도리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잘 입지 않는 옷들을 정리해서 기부할 수 있는 옷들과 너무 상해 버려야만 하는 옷들로 나누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옷의 가짓수는 3분의 2로 줄었는데 입을 수 있는 옷들은 오히려 더 많아진 것이다. 결국 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옷이 너무 많아서 입을 옷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뿐이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최근에 또 있었다. 내가 강의를 하고 있는 대학과 은사 스님이 계신 절은 운전해서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주말에 그 길을 오가면서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음악 감상을 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탓에 클래식, 재즈, 가요, 팝송, 영화음악 등 다양하게 듣는데 얼마 전부터 더 이상 들을 만한 음악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스마트폰 안에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음악을 시작으로 최근 앨범까지 수두룩하게 가득 담겨 있는데도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최근에 구입한 음악들만 주로 듣는다는 사실에 있었다. 최근 음악이 좀 시들해지면 지금 들을 만한 음악이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한번은 음악을 전공하는 동료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교수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 스마트폰의 무작위 재생 기능을 활용해 보라고 권했다. 무작위 재생 기능을 활용하니 스마트폰이 알아서 무작위로 이 음악 저 음악을 재생해서 하나씩 틀어주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김광석이나 엔니오 모리코네, 조지 마이클과 같은 주옥같은 명곡들이 내 귓가를 다시 노크했다. 가만히 보니 들을 만한 음악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만을 자꾸 찾는 버릇 때문에 이미 가지고 있는 좋은 음악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최근 뉴욕에서 관람한 뮤지컬 ‘피핀(Pippin)’은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난 피핀은 삶에서 위대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 전쟁 영웅이 되기도 하고,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 혁명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허망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은 항상 곁을 지켜주었던 여자친구와 함께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것임을 깨닫는다. 오랫동안 애타게 찾아 헤매던 것이 막상 찾고 보니 다름 아닌 항상 자기 옆에 존재했던 것이었다.

 사실 구도자들이 추구하는 깨달음도 피핀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깨달음이 뭔가 특별한 경험이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수행을 하면 할수록 평상심이 곧 도(道)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달음은 뭔가 없었던 것을 새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본성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는 순간, 많은 성인들은 ‘눈앞에 항상 두고도 못 봤다니’ 하며 껄껄껄 웃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현재 삶과는 다른 뭔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성취하는 것으로 여기는 수가 많다. 그래서 지금이 늘 불만족스럽고,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나아 보이는 것을 찾고 싶어서 마음이 바쁘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소중한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얼마 전 트위터에 혜광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행복한 삶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새기니 눈 내리는 3월의 아침도 나름 참 아름답다.

혜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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