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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일 / 신년주일

 

하나님과 씨름하는 한 해

창세기 32:22-32

 

곽건용 목사

 

새해 첫 주일에 야곱을 읽는 까닭은?

 

오늘은 2016년을 여는 새해 첫 주일입니다. 우린 지난 31일에 강병수 교우 댁에서 송구영신예배와 친교를 하면서 즐겁게 새해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올해도 그리 녹녹치 않은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면 경제전문가들이 새해 경제전망을 내놓는데 근래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긴 경기를 예측할 때 주로 듣는 말은 ‘불경기’라는 말입니다. ‘호경기’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 말은 경기를 ‘전망’할 때가 아니라 ‘회고’할 때만 듣는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한국에서는 해마다 교수들이 그 해의 사자성어를 뽑는데 근래에 뽑힌 말들을 봐도 긍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작년에는 어리석은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뜻이라는 ‘혼용무도’(昏庸無道)가 선정됐습니다. 그런 말을 알고 있던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교수들 말이라고 100%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뽑은 사자성어가 죄다 부정적인 걸 보면 지난 세월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합니다. 부정적인 뜻을 가진 말만 뽑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것 할 시간에 좀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뭐라도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교수’라고 하면 명실상부 지성인이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 인사들인데 사회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체 뭐 했나 싶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저는 거의 매년 신년주일에 창세기 32장을 읽고 같은 내용을 설교합니다. 야곱이라는 인물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고 그가 겪은 특별한 경험은 새해를 맞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저는 이 얘기를 새해 첫 주일에 읽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요셉과 더불어 야곱은 이스라엘이 떠받드는 조상들 가운데 한 명이지만 그는 다른 세 명과 구별되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이 독특함은 그가 남달리 신앙이 깊다거나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누구 못지않게 굴곡지고 고단한 삶을 살았는데 남 탓을 할 상황은 아닙니다. 그것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로 표현해야 할 겁니다. 오늘은 사자성어가 많이 나오네요.

 

‘야곱’이란 이름은 쌍둥이 형보다 세상에 먼저 나오려고 어머니 태중에서 형의 발꿈치를 붙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물론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닐 겁니다. 태어나는 갓난아기가 무슨 정신으로 먼저 나오겠다고 형의 발꿈치를 붙잡겠는가 말입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겠지요. 게다가 야곱이란 이름에는 ‘사기꾼’이란 뜻도 있다고 하네요.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자식에게 이런 흉한 이름을 붙일까 싶은데 어원이 사기꾼이란 것은 가능한 추측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평생을 속임수로 일관해온 사람이란 것은 맞는 말입니다. 어느 종족이든 자기 조상의 나쁜 점은 감추고 좋은 점은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스라엘은 자기 조상 야곱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독특합니다. 그걸 과장할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에게는 형에게 갈 축복을, 형에게는 장자의 권리를 속임수로 가로챘습니다. 빼앗긴 사람에게도 잘못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더 큰 책임은 야곱에게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는 형이 자기에게 보복하려 하자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 외삼촌 라반에게로 도망칩니다. 거기서 오랫동안 살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지요.

 

그렇다면 야곱이란 사람의 본성도 바뀌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환경이 바뀌어도 그는 거기서도 바르게 살지 않고 외삼촌 라반과 서로 속고 속이기 경쟁을 벌였습니다. 결국 그가 경쟁에서 승리해서 많은 재산을 갖게 귀향하게 됐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다!

 

오랜 타향살이를 끝내고 귀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식솔과 재산으로 보면 금의환향(錦衣還鄕)이었지만 형과 만나야 했기에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형의 보복이 두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형을 위해 선물을 한가득 챙겨서 식구들을 함께 먼저 강 건너로 보내놓고 혼자 뒤에 처졌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형이 보복하면 자기만 살겠다고 그랬을까요? 설마 그러랴 싶은데 그의 속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워낙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서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형을 만나기 전에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분과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은 형과의 만남보다 훨씬 더 위험한 만남이었습니다. 타향살이하는 동안 야곱과 하나님 사이에는 그 어떤 소통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한 번도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고 하나님도 그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지시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마치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속임수를 썼겠지요. 하나님도 야곱에게 무관심하다는 듯이 그의 삶에 관여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야곱이 나루터에 혼자 누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사람은 다급하면 하나님을 찾는 법이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진짜 나타날 걸로 기대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정말 하나님이 나타나실 줄 꿈이나 꿨겠습니까!

 

하지만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그가 기대하고 필요로 한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불안해하는 그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걱정 말라’고 용기를 주는 하나님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다짜고짜 그의 허리춤을 붙잡고 씨름하자고 덤벼든 분이었습니다. 사정없이 공격하고 상처를 줘서 그를 쓰러뜨리려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영문도 모르고 이런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제가 구약성서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야곱의 허리춤을 붙잡고 죽기 살기로 씨름하는 하나님! 먼 하늘에서 리모컨으로 우리 삶과 역사를 원격조종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삶 한복판에 몸소 오셔서 사람들과 치고받고 뒹굴고 씨름하는 하나님,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끌고 당기며 씨름하시는 하나님,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허리춤을 맞잡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데도 단계와 절차가 있긴 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씨름하진 않지요. 처음에는 듣고 배우고 훈련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하지만 신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씨름하는 겁니다.

 

신앙은 설득하고 설득 당하는 겁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묘해서 설득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몸이 움직이려면 마음이 움직여야 하고 마음이 움직이려면 설득되어 동의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동반자요 동역자입니다.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상속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닌 동반자요 동역자이기 때문에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게 아니라 설득하고 설득되어 합의를 이뤄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한편으론 하나님에게 설득돼서 “예, 하나님, 잘 알겠습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당신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고 응답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에게서 “그래, 네 말이 옳다. 알았다. 네 말대로 하자.”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설득할 수 있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도라는 걸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복음서에도 이 사실을 보여주는 얘기가 있습니다.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예수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을 때 예수님은 그녀에게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합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했지요. 이 얼마나 모욕적인 말입니까. 어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싶은 정도로 듣는 사람에게 모욕적인 언어폭력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말을 듣고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개가 되는 모욕도 마다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녀에게 “그대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시오. 귀신이 그대의 딸에게서 나갔소.”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여인을 떠보려고 그 모욕적인 말씀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하셨을 리 없는데 분명 하셨다니까 그건 그녀를 떠보려는 의도에서 나왔을 거라고 추측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얘기에는 그렇게 추측할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이 여인의 말을 듣고 마음을 고치셨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물론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려면 예수님도 사람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시는 분이라고 여겨야 하는데 대개는 예수님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약성서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계획을 바꾸시기도 했습니다. 벌하려다가도 회개하면 벌하려던 계획을 취소하셨습니다. 요나서가 가장 대표적인 보기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도 그러셨다면 예수님은 아니라고 볼 이유가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겁니다. 프로레슬링 경기처럼 적당히 흉내만 내는 씨름이 아니라 거친 숨 몰아쉬며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온 힘을 다해 겨루는 씨름 말입니다. 일반 씨름과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과의 씨름은 이겨도 이기는 것이고 져도 이기는 것이란 점일 겁니다. 이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고 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설득됐다는 뜻이므로 이겨도 이기는 것이고 져도 이기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적당히 겨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겨뤄서 이기면 이기고 지면 지는 것이 맞습니다. 야곱처럼 말입니다.

 

뭐든 하나님께 원해서 기도할 때는 왜 내가 그걸 원하는지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남들이 다 원하니까 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이유와 목적을 깊이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라는 게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공동의 선을 위한 것인지를 분별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 원하실 때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므로......”와 같은 모호한 이유는 부적절합니다. “믿는 사람이 떵떵거리며 부자로 살아야지 궁상맞게 살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기 때문에.....” 같이 기만적인 기도 역시 바르지 않습니다. 재물이 필요해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 재물이 필요한지, 무엇에 쓰려고 필요한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음이 움직이고 설득되지 않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 법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선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겉치레와 미사여구에 혹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분이 아닙니다. 지키지도 않을 헛된 약속에 넘어가서 행동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해되고 설득됐을 때 비로소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벌이신 씨름은 야곱을 몸으로 설득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름이 바뀌었고 다리를 절게 되다

 

씨름의 결말은 의외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급소를 공격하셨습니다. 반칙을 저지르신 것이죠. 사람이 죽기 살기로 덤비면 하나님도 감당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쓰러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면서 붙들고 늘어진 겁니다. 그가 무슨 복을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의외의 방법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과 씨름한 후에 야곱에게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는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뀐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에게 환도뼈를 강타당해 그가 다리를 절게 된 겁니다. 이 두 가지 변화에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새로운 이름은 새로운 인격과 새로운 존재를 상징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이름이 달라졌다는 것은 정체성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달라지면서 정체성이 달라졌습니다. 신약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바울로 이름이 바뀌면서 복음의 전파자가 됐습니다. 야곱의 새 이름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란 뜻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사람이란 얘기입니다. 이때는 야곱이 새로운 이름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훗날 후손들은 이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부를 때마다 감격해 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사건 이후로 그가 절뚝거리며 살았다는 데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절뚝거림은 몸에 새겨진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여기서 저는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갈라디아 6:17)라는 바울의 말이 떠오릅니다. 야곱의 절뚝거림과 바울이 말한 ‘예수의 낙인’은 같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에게 예수의 낙인이 십자가의 상징이듯이 야곱에게 절뚝거림은 하나님과의 씨름의 상징이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거나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우쭐거리며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씨름한 흔적으로 일생을 절뚝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말한 ‘예수의 낙인’이 곧 약하고 무력한 십자가의 상징이듯이 절뚝거림 역시 약함과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런 뜻으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유대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22-24절).

 

예수의 제자는 겉보기에는 약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힘이며 지혜인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불평하지 않고 절뚝거리면서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걷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후 동편 하늘에 해가 떠올랐습니다. 야곱은 해를 바라보며 “내가 여기서 하나님과 대면하고도 목숨을 건졌구나.”라고 중얼거리며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떠나갔습니다. 야곱도 그곳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 사람은 더 이상 사기꾼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한 흔적을 안고 절뚝거리며 살아갈 ‘이스라엘’이었습니다.

 

2016년 한 해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구체적인 모습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과 씨름하며 삽시다. 하나님의 허리띠를 굳세게 붙들고 놓치지 말고 힘껏 씨름하며 삽시다. 그 씨름의 흔적을 안고 절뚝거리며 사십시오.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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