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지는 현실을 통하여 꺼꾸로 투영하다보니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결과만 남습니다.
1.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 --- 성소란 결과물만 남았습니다.
---> 하나님의 뜻 : 내가 그들과 함께 거하겠다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성전을 보고 항상 보호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를 원합니다.
---> 사람의 뜻 : 성전이 있어야 하나님을 모신다고 생각합니다.
성전이 없거나 성전이 더러우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할 정도로 멋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오시지 않거나 거하지시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 양을 죽이는 제사 --- 양을 죽이는 행위만 남았습니다.
---> 하나님의 뜻 : 죄인들을 이미 용서하셨고 그 죄값을 하나님의 생명과 피로 갚으셨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무라도 그들의 죄로 그들이 죄값을 치루지 않아도 됨을 알고 믿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 사람의 뜻 : 양을 바쳐야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선제된 용서는 사라지고 양을 바치는 행위만 남습니다.
양을 바치는 행위가 결국 기복신앙이 되어 버립니다. (바알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바알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3. 십일조 --- 바치는 행위만 남습니다.
---> 하나님의 뜻 : 만물의 소유가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처럼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지 말라하십니다.
십일조를 생각할 때마다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기억하기를 원하십니다.
---> 사람의 뜻 : 바쳐야 복을 받고 바치지 않으면 화를 당합니다.
이리저리 돌려 말해도 바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또한 주시고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억함이 아닌 받아야 주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이 또한 바알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것은 의미가 중요합니다.
"의미는 따지지 말고 그냥 하라는대로 해!" 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아닌 바알을 섬기라는 말이 됩니다.
성령께서는 그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것을 포함하여
생명까지 주시고
함께 거하며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성경과 만물을 통하여
스스로가 어떤 분이심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을 아는 것이 행복이며 구원임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냥 시킨대로 하고 생각은 스스로가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알려주시기 위한 모든 방편들이
사람들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스스로의 하나님, 바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사람들이 깨닫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따르기를 원하는데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며
조건부이신 하나님 곧 바알을 섬기려고 합니다.
오늘 나의 삶에 오시는 하나님은
조건부이신 하나님이신가?
무조건부이신 하나님이신가?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속(뜻과 의미)은 오직 성령께서만 아시고 또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행위만 남고 의미가 사라지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닌 바알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에 새기는 법을 주셨습니다
이른바 양심의 법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실일금만 내면 됐지
왜 전 재산을 낸다고 그 아우성을 쳐서
죽습니까?
바로 양심의 법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