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
2014.10.29 04:03
이 상구 의사의 강의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가 바로 이 사실과 진실의 이야기이다.
사실은 눈에 보고 귀로 들은대로 말하는 것이다.
진실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거나 덮어서 더 나은 결과를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어린아이가 천번을 넘어져야 비로소 혼자 걷게 되는데 그 천번의 넘어짐 뒤에는 그런일이
아무렇지도 않고 꼭 아이가 스스로 걷게 되는 날이 있다고 믿는 어머니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허시모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왕대아의 이야기도 사실이다.
이 사실을 폭로하기 위하여
오직 손가락질 하기 위하여
다시 거론했다면
그 글은 사실의 글이고
그사람은 사실의 사람이다.
동영상의 그 강의가 백프로 진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그가 진실을 향하여 혀를 움직여 간 흔적들이 많이 있다.
그것을 보고 그러면 그렇지
"안식교의 더러운 전통" 이라 끌고가는 자의 사실적 눈과 귀를 보는
나의 가슴이 아프다
그 사실을 보고 교회를 보호한답시고 사실적으로 덤벼드는 사실적 공세들
또한 가슴 아프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음은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하체에 일어난 그 사실을 단순히 식구들에게
알리려 했던 그일이 하나님의 눈에 가증했다.
셈과 야벳이 담요를 맞잡고 뒷걸음 치면서 닥아와 덮은 진실은
하나님의 눈에 참으로 가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함은 가나안의 아비가되어 사실 (폭로) 의 부족을 이끌어 간 족장이 되지만
셈은 훗날 그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인류의 죄를 다 덮어버릴 한 진실의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진실의 족장이 된다.
벗기고 폭로하는 사단의 정신을 대표하는 가나안의 먼저된 정신을
덮고 용서하는 예수의 정신을 대표하는 참 이스라엘의 나중된 정신이
그 땅을삼키는 것이 가나안의 정복이고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사백년을 지체하게 된 연유를 성경은
가나안의 죄악이 아직 관영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표현했다.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고유한 죄 (씨가 되는) 를 지을수가 없다.
다만 그 죄를 보고 서로의 벗었음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넘어지는
죄만 범할 뿐.
죄인은 죄를 보고 넘어지지만
의인은 의를 보고 일어섬이 진실이다.
스스로 진리라고 공언하며 이땅에 오신이가
간음중에 잡힌 여인의 행사를 공개한 율법의 사실앞에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당신과 나는 용서받지 못할 그 간음한 여자 (교회)일 뿐이다.
여기 카스다에 천번이상 넘어지지 않고 걷는것을 할 수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
왜 여기는 성경말씀 그리고 예언의 신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올라오는 쪽쪽 때려잡는 몽둥이가 있어야 하는가?
성경과 예언의 신과 이교회의 28개의 교리는 십자가의 피로
덮지 아니하면 다 사실로만 남게 된다.
사실에 끌려서 교인되면 그는 사실만 낳게 된다.
덮어 주셨기에 교인된 자는 모든것을 덮으려 할 것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지만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내게로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뽑아 내었던 시실의 성경절이
얼마나 많이 있었으며 그것을 목적으로 사용된 증언들 또한
얼마나 많았는가?
그것들을 진실과 진리로 샤용할 수 없을까?
벗지 아니한 교회도 이세상에 없고
벗지 아니한 인간들이 이세상에 없으나
간혹 잎힘을 당한 자들이 있고
잎힘을 얻는 교회도 있을 것이다.
날마다 그 잎혀주신 옷도 빨아야 한다는 것이 십사만 사천의
특징이지만
도무지 빨것이 없어 보이는 그 의로운 방망이들을 보면
나는 진실로 이 교회의 흐름이 걱정이 된다.
요딴것 하나도 덮지 못하고 고민하는 또 하나의 벌거벗음의 고백!!!
벗을 때는 시원하고
잎혀주실 때는 따뜻해요!!!
힌번 해 보세요!!!
댓글 7
박진하
2014.10.29 04:17
장도경
2014.10.29 04:27
박진하님.
"요딴것 하나도 덮지 못하고 고민하는 또 하나의 벌거벗음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나요?"
한번 때리고 싶다면 제발 한번 쎄게 때려 주세요
님의 말처럼 우리 한번 심하게 넘어진 다음에 일어섭시다!!!.
맞는 쾌감도 대단한 사실적 쾌감일 수 있을것이니.
기왕에 맞을려면 믿음의 형제 그리고 목사님에게서 맞아봅시다.^^*
좋은 하루 (밤) 되세요!!
박진하
2014.10.29 04:32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말씀 더 드리면,
우리 교회 안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들의 가르침과 따름
그리고 그것이 오랜 세월 답습되어
이제는 그 비정상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현실,
그래서 그러한 현실에서 비정상 상태의 괴물과도 같은
이제는 도저히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재림 신앙인들이
점 점 많아진다는 이 현실이 이 밤 제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합니다.
님도 좋은 하루(밤) 되시길 ......
장도경
2014.10.29 04:40
박진하 목사님의 글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글중에서 매우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들이 많이 보이는 분입니다.방망이만 솜처럼 부드러우면 더욱 인간적인 분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심판을 내게 맡겨라 하셨으니 그분의 심판이 진실하지 않겠읍니까?
그건 그렇고
사진에서는 연배가 나랑 비숫하게 보이던데 왜 우리는 서로 일면식이 없는지요?
저는 삼육대학 70 학번입니다.
미국 중동부에 살고 있습니다.
박진하
2014.10.29 04:49
장도경님,
저는 학교를 1년 휴학하는 바람에 80학번이니
님보다 훨씬 후배입니다.
저는 아합 시대 엘리야의 방망이가
결코 두둘겨 패는 방망이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 초림 당시 침례 요한의 방망이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한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지금 하늘의 존재들은 이 땅을 향해
초림 당시 처럼 재림하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할
마지막 엘리야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처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아닌
바로 그 엘리야의 출현을 하늘은 기다립니다.
그 엘리야들이 나타나야 우리 주님이 하늘에서 출발하시어
이 땅으로 강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최대의 결핍과 부족은 인물의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그 인물이란 매매되지 않는 사람,
심령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비록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굳게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교육, 57)
저를 비롯하여 장도경님과 많은 재림 성도들 중에
그러한 인물 하늘이 기다리는 엘리야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감사드리며 님과의 대화는 여기서 맺을까 합니다.
이영희
2014.10.29 04:56
성찰과 함께 공감하는 깊은 사유의
시의적절한 글입니다
사실과 진실의 이분법적 사고가 현상학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요인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는 것과 깨달음, 머리와 가슴, 지식과 지혜, 이성과 감성에 대하여
깨진 얼음 조각 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음성언어, 문자언어로 조리된 밥상을 들다가
오랫만에 가슴언어로 조리한 따끈따끈한 수프 한 그릇 먹는 기분입니다
과연 밥상을 다시 차려야 할까요, 아님 밥상을 뒤 엎어야 할지 ..
이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장도경
2014.10.29 05:48
이 영희 선배님.
이 아침에 선배님의 발길이 여기에 함께 있었음을 보면서 비록 서로가 먼곳에 있지만
같은 시간 같은 글에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다는것 축복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내 마음에 딱 맞을 때
증언의 말씀이 내 마음에 딱 맞을 때
이때에 비로소 우린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이 맞아야 합니다.
증언의 말씀에 우리의 생각이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들이 사실로 존재하지 않고
진실로 역사하게 됩니다.
그 진실을 향하여 오늘도 넘어지며 일어서며 걸음마를 합니다.
쳐다보는 어떤 눈길을 느끼며...
그런 나에게 선배님의 글은 항상 가슴을 울립니다.
길벗 하나 있어서 외롭지 않은 게시판의 뒷골목 (?)에서
군밤 장수 한분을 기다립니다.
장도경님,
먼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홀딱 벗기는 사람도 있어야 성경이구요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람도 있어야 성경이 됩니다.
홀딱 벗기는 사람이 있어야 은혜가 필요함도 알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람도 있어야
덮어주는 사랑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넘어지는 죄인이 있어야 일어서는 의인도 있지 않겠습니까?
님은 카스다에 일어나는 두 가지 양쪽 모두 때문에 아프시다고 하셨나요?
성경의 역사가 언제나 그러했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언제나 그렇고
교회 안이 언제나 그렇고 이 카스다 게시판이 언제나 그러한 것을요..
저는 죄를 죄라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판단하지도 못하고
지적하지도 못하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 많이 아픕니다.
목사도 평신도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국 아무것도 아닌 신앙이 아픕니다.
기록되었으되를 통해 명백한 불의임에도 그것이 불의인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알아도 입을 다무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 매우 너무 아픕니다....
그런데 장도경님 궁금합니다.
님의 윗 글 내용은 결론적으로 사실입니까 진실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