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광우병 감염 소가 발생했는데도 우리 정부가 4년 전 광우병 파동시 대국민 약속을 했던 수입중단·전수조사·급식중단 등의 조치는 커녕 검역중단도 보류한채 먼저 미국에 물어보겠다는 입장을 밝혀 파문을 낳고 있다. 똑같은 정부가 대국민 약속도 지키지 않고 대놓고 거짓말을 하면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미국 농무부가 캘리포니아주 중부지방 목장에서 사육된 젖소 1두에서 소해면상뇌증(BSE)이 확인됐다고 밝히자 우리 농림수산식품부는 25일 오후 늦게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미측에 상세한 정보를 제공토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제공한 정보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이로 인한 통상마찰을 예방하기 위한 우선적인 조치가 정보 요구라고 설명했다. 광우병이 발생했는데도 우선 수입중단 조치도 하지 않은채 더 물어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5월 7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더구나 정부는 이번 소에 대해 “30개월령 이상된 젖소고기”로 추정하면서 “미국에서는 주로 가공용 원료로 사용되고 있어 국내에 수입될 가능성은 없으며,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 쇠고기와는 차이가 있다”고 미국산 쇠고기를 두둔하는데 급급했다.

애초 정부는 이날 아침 광우병 발견 소식이 나온 직후 검역중단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보류했다. 수입중단은 수입자체를 안하는 것인 데 비해 검역중단은 수입한 소를 창고에 놓아둔채 유통을 시키지 않는 조치이다.

이 같은 우리 정부의 조치는 4년 전 국민들에게 밝혔던 약속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2008년 5월 8일자 9개 일간지에 실린 광고를 통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수입중단 △이미 수입된 쇠고기 전수조사 △검역단 미국에 파견, 현지 실사 참가 △학교 및 군대 급식 중지 등을 천명했었다.

  
정부가 지난 2008년 5월 8일자 신문에 실었던 추가 광우병 발생시 대국민 약속을 밝힌 광고.

이 뿐만이 아니라 당시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그해 5월 7일 국회 쇠고기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며 “GATT(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 20조를 근거로 실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종훈 당시 통상교섭본부장도 "국민 건강의 위협이 있을 때에 수입 교역의 중단 포함해 예외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라고 밝혔었다.

특히 이번 광우병 발생 미국소의 경우 도축된 쇠고기 가운데 2%도 채 되지 않는 표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어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광우병 감염소가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또한 미국에서는 쇠고기 이력추적제가 실시되고 있지 않아 어느 농장에서 어떤 사육과정을 통해 감염이 됐는지 전혀 알 수가 없고, 미국은 이번 쇠고기의 월령조차 밝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국민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을 줄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일단 물어보고 생각해보자’는 입장을 정해 “과연 국민의 건강을 안중에 두고는 있는 것이냐”는 성토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2008년 5월 8일자 1면 머리기사

4년 전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집중 취재했던 임명현 MBC 기자는 25일 “광우병 발병시 수입중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당시 했던 약속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하는 약속인데, 하물며 같은 정부에서 이것을 안하겠다니 너무나 어이가 없다”며 “통상갈등 주장은 당시에도 광우병이 발견되면 수입중단으로 이어져 통상갈등이 생기는 것을 예상못한 것도 아닌데, 수입중단은 커녕 검역중단도 하지 않겠다니 황당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임 기자는 “정부의 이런 태도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현실”이라고 각성을 촉구했다.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은 “당시 수도없이 수입중단을 약속해놓고, 실제 광우병 소가 발견되니 약속을 어긴 것은 국민을 상대로 대놓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특히 미국이 이번 광우병 소에 대해 발표한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을 정도인데, 우리 정부가 잘 모르면 일단 수입중단을 해놓고 사태파악을 하는 것이 정상인데, 먼저 물어보겠다는 발상은 매우 안이한 대처”이라고 성토했다.

검역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우 실장은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라며 “우리의 검역시스템은 더 강화하고 말고 할 것이 없다. 한마디로 하나마나한 얘기이며, 거의 국민 우롱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2008년 5월 7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김종훈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문제가 생기면 교역의 중단 포함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라고 밝혔었다.
그는 “아무 조치도 안했는데 물어보면 과연 미국이 대답하겠느냐”며 “가뜩이나 미국으로선 수출급감이 우려될텐데, 자국에 불리한 정보를 주겠느냐”고 개탄했다.

우 실장은 이번 미국소의 광우병 사태의 위험성에 대해 “미국 검사체계는 실제로 전체 소의 0.1% 수준 밖에 하지 않는다”며 “이번에 한 마리가 발견됐다는 것은 한 마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우 실장은 ‘30개월 이상 소는 우리의 수입 대상이 아니어서 괜찮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검사할 방법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 소가 30개월 이상 된 소인지 여부도 불확실하다”며 “또한 20~30개월 된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한 바 있다”고 비판했다. 임명현 MBC 기자도 “30개월 이상이라는 근거가 없다”라며 “외신에도 ‘적어도 30개월 이상’이라는 수준의 추정만 있을 뿐 농장을 모르면 월령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