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끝에서 부터
실뿌리 하나로도 닿아보지 못하는
고뇌의 언어들을 서로 안고
민초의 겨울 들판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이미
돌무덤이 되어있는 제각기 다른
견고한 시선들을 비집고
땅속에서
수줍은 떡잎하나 봄의 소리와 함께
일어선다.
스스로 흘린 피보다 더많이 흐르는
저주의 핏물을 퍼 마시고도
아직은 비틀거릴 수 없는
엄연한 생명의 이름으로
떡잎에서 쏘아올리는
이 줄기하나 (동성애)는
가련하고 애처로우나
외롭지만은 않다.
그보다 더한 저주로
그보다 더한 분노위에
그보다 진한 핏물로 홀로 줄기를 세워
세상을 짊어진 나무가 있었다
가룟인 유다의 잔머리에서 시작된
저주의 떡잎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에서
밤새껏 어둠의 골목을 휘젓던 발자국들과 함께
다져지고
그날밤 만큼은 "나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울어대던 어느 장닭의 배신이
누구의 가슴까지 후벼파며
저주의 새벽을 힘차게 몰고 왔었다.
마지막으로
우주의 정의마져 씻겨 내려간
빌라도의 세숫대야엔
이미 저주의 핏불이 흥건하다.
마침내 나무에서 피가 흐르고
세상은 그 피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너와나
새로은 생명을 얻었다.
우리도 거기 함께 있어서
찌르지 않았더라면
저주하지 않았더라면
모른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상관이 없다고 손 씻지 않았더라면...
알 수도 없었을 그 용서
얻을 수도 없는 한없는 은혜
신의 아찔한 그 눈먼 사랑!
저주의 가시관 없이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니다.
죄인이 율법으로 몰아부치는
그 한심한 저주가 없었다면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니다.
찌른자도
저주한 자도 함께 보고
합께 얻는것이 십자가의 용서다.
그래서 우리는 찔러야 한다.
철저히 저주해야 한다.
비 정상이 정상을,
반 생명적 생각이 생명적 사고를 찔러야한다.
누군가 동성애자의 비정상을 찔렀고 거기서 피가 흘렀기애
우린 그들 생명의 슿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계속해서 그들의 똥꾸멍 (?)을 후벼 팥기에
우리는 그들의 영혼의 참혹한 애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찌를수록 점점 더 슬퍼지는 그들의 신음을 가슴으로 듣기위해
저주와 찌름은 여기 소중한 역활의 역설로 자리잡고 있다.
찌르고도 찌르지 않았다고 소리치는 우리모두의 죄 앞에서
빛이 어둠을,
생명이 반 생명을,
은혜가 율법을,
마침내 극복한다는 진리도 함께 후벼파 보자.
은혜의 똥구멍에서 용서의 피가 다시 철철 흐를때 까지...
This is refreshing.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