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라는 말의 영어적 의미는 cross 즉 수직과 수평의 방향 그리고 씨줄과 날줄이 겹쳐있는 모양이다.
그런 모양의 형틀에 메어 달리신 십자가의 주인께서는 그 형틀의 특별한 의미대로
내가 너희를 사랑함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부탁을 남기셨다.
오직 하나님과의 수직관계에서 들어내는 신앙 즉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자마다 천국에 들어갈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인 이웃간에도 서로 사랑하는 수평적 사랑이 겹쳐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크게 부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십년 아니 삼십년을 수직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안에서 바로 옆자리에 언제나 앉아있는 교우들하고 함께 예배를 드린 세월만큼이나
사랑의 관계가 돈독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언제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풍경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안의 진정한 모습들이다.
사랑하는 선생님이 돌연 십자가를 왜 지셔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 십자가의 의미는 더더욱
알지 못한채로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제각기 자신의 먹고사는 삶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그 삶의 현장까지 쫓아와서 그중에 가장 심하게 십자가를 부인하던 수제자에게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시면서 그 사랑이란 "내 양을 돌보는 일" 이라고 삼세번을
그 제자들의 귀에 못을 박는 광경은 며칠전에 자신이 달리신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이 함께
가야한다는 십자가의 의미를 일깨우신 특별한 의미의 시간이었다.
비록 연세로는 어느정도 납득이 갈만한 죽음이었지만 건강하시던 분이 짧은시간 즐창 건강상으로
내리막길을 달리시다가 끝내 돌아가신 한 교우님의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채려놓은 저녁을
먹으면서 오랫만에 그 숙연한 장례분위기와 또 평상의 예배관계에서 경직되어있던 관계를 털어버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우거지탕을 홀짝거리면서 평소에 전혀 보지 못하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교우간에 꽃피는것을 목격하고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국물이 있는 봄과같은 광경" 을 소제로 해서
이 시를 하나 쓰게된것이다.
시를 쓰는 중에 평소에 과묵하시던 장노님들과 여집사님들이 비좁게 앉아있던 식탁에서
안식일엔 볼 수 없던 스스럼없이 쏟아내시던 명랑하고 살가운 대화와 이야기들이 잘 잊어지지 않고
싯귀가 떠오르는 시간 내내 내 마음속에서 싯귀와 함께 오랫동안 맴돌고 있었다.
대부분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으로 구성이 되었던 구약에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언제나
수직적인 관계로만 닥아왔고 그 율법이 주어지는 시내산에선 감히 접근하기 쉽지않은 천둥과
번개의 엄숙함속에서 두렵고 떨릴뿐만 아니라 또 막연하기까지한 수직적 예배가 오직 선택된
무리들에게만 시작이 되지만
"기쁜소식" 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닥아온 복음이라는 신약의 장에선 예배의 대상이 나약한 어린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인간의 울음을 시작으로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또 보고 들을 수 있는 수평적
예배를 드리도록 온세상을 초청하는 화기애애한 식탁의 예배가 시작이 된 것이다.
구약이 금식과 금욕적이며 선택적이기도 한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면 신약에선 반대로 먹고 마시는
잔치의 성격으로 그리고 소수의 선택으로만 제한하는 예배가 아니라 모두에게 문을 여는 자격을
불문하는 초청적 예배로 전환이 된다.
수평의 예배는 갈릴리의 새벽에 숯불을 피우시고 거기 떡과 생선을 구어 먹이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나를 사랑하는 수직적 예배란 내 양을 먹이는 수평적 예배와 맞물려 있다는 특별하고 핵심적인 가르침을
가르치신 것이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선 니가 예배당에서만 예배를 드린것이 아니고 옥에서 또는 배고파하는 이웃의 식탁에서
그리고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현장에서 니가 예배를 드렸는가 라고 묻는것 또한 깊이 생각해 볼
주제이다.
우리는 왕왕 죠지 밀러의 응답받은 기도에 촛점을 마추려 하지만 고아의 형편을 돌보는 그 수평적 예배속에서
드리는 눈물어린 수평적 기도를 들으시는 의미에 촛점을 마추어야 한다.
사람의 몸속에는 그래서 건데기 보다는 국물이 더 많이 있다.
당신의 몸속에 있는 건데기와 국물을 먹고 마신자라야 내 제자이고 또 먹고 마신다음 그것을 스스로의 몸에
담아서 다시 건데기와 국물을 나누어 주어야 완성이 되는 예배를 소개하신 분과 함께 그런 예배를 드려보자고
부끄러워 그냥 싯귀로 말하고 싶었다.
에스겔의 마지막 부분에는 성소에서 국물이 흘러서 감히 인간이 헤엄치지도 못할 은혜의 강이 되고 그 강주변에서
그 물을 마시고 자란 나무들이 달마다 새로운 과일을 맺고 이파리도 약재가 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있는곳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속에서 국물이 흐르면 그것이 초대교회의 예배이고 재림을 맞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임을 확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