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목사님의 시 "이름을 지우며" 를 읽으며
나의 부모님 그리고 그 위 세대를 생각한다.
임박한 재림
세천사의 기별
이런 것 때문에 안식일교인 된 분들이다.
지금은 노인이 되고
한 주가 멀다 하고 친구/동역자들의 부음을 접하는 분들에게
야곱의 환난이니 일요일 휴업령이니 하는 것들은 별 의미가 없다.
그분들에게 종말은 정말 가깝다.
젊었을 때 생각하시던 방식으로 오는 종말이 아니라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왔던 그 종말이다.
만일 그분들이 젊었을 때
내 생전에 세상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면
아니
내 생전에 재림이오느냐 안오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삶의 모습, 꿈, 걸었던 길이 달랐을까?
그랬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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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스다에 천국 이야기가 오고가는 동안
이전에 부르던 찬미들이 떠오른다.
'저 뵈는 하늘집 날마다 가까와'는
지금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젊은 시절에 부를 찬미가 아니었다^^
(나는 그게 재림의 날이 하루 하루 더 가까워서
지금 하룻길 남았다고 생각하고 불렀었다)
아마 '소망' 편에 있었을 이 찬미는
문자 그대로 삶을 정리해야 하는 노년의 찬미다.
구글 검색해보니
재림마을에 있는 가사가 제 일번으로 뜬다.
<meta charset="utf-8">1. 저 뵈는 하늘 집 날마다 가까워 내 갈길 멀지 않으니 전보다 가깝다
2. 내 주의 집에는 거할 곳 많도다 그 보좌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갑니다
3. 이 세상 끝날에 십자가 벗고서 내 면류관을 쓸 날이 가깝게 되었네
4. 내 일생 남은 길 분명히 모르니 내 주여 길 다가도록 날 인도 합소서
후렴. 더 가깝고 더 가깝다 하룻길 되는 내 본향 가까운 곳일세
왜 이런 찬미를
분별 없이 젊은이들에게도 부르게 했는지 모르겠다
파란 교복 입은 싱싱한 아이들이
이 찬미를 부르는 건
청승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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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겹도록 진부한 말이지만
'세상의 끝' 보다 '나의 끝' 에 더 마음을 두어야 한다.
어떤 분은
'내 생전에 내 생전에' 라 한다는데
내 예언은
그와 나의 생의 끝이
이 세상 끝보다 먼저 온다!
돈 걸라면 건다.
그리고
저 절대 고독을 느끼는 justbecause 님과
그분에게 마음을 터 놓은 모든 분들에게
또 무슨 야곱의 환난이 더 필요한가?
안식일교회가
지금 야곱의 환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의미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저 미래에 있을 야곱의 환난과 같은 생뚱맞은 이야기만 계속 하는 한
이 교회는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