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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사회] 시간도둑과 싸우는 법 / 김현경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현대인의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비판한 동화로 잘 알려져 있다. 어느 마을에 회색 양복에 회색 모자를 쓰고 회색 시가를 피우는 한 무리의 사나이들이 나타난다. 이 ‘회색도당’은 시간저축은행에서 나온 외무사원들이다. 그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쓸데없이 버려지는 시간을 절약하여 자기네 은행에 맡기라고 설득한다. 그러면 몇 배의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겠다고 말이다. 회색도당의 방문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쓸데없는 일들’(하지만 그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었던 일들)이 모두 일과표에서 삭제된다. 회색도당의 충고를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은 점점 발전한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고속도로가 뚫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서로 말을 건넬 시간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사람들은 왜 이 역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왜 그들은 저축한 시간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준다는 회색도당의 말을 믿었던 것일까?

사실 ‘시간을 저축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엉터리가 아니다. 우리는 화폐에 시간을 저장할 수 있고, 또 저장된 시간을 꺼내서 쓸 수 있다. 돈이 있으면 일하지 않아도 된다. 즉 여가를, 시간을 살 수 있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그 물건 안에 깃든 타인의 시간을 산다는 뜻이다. 돈이 있으면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이는 누군가가 그 돈에 해당되는 시간만큼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덕택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저축한 시간에 대해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 한평생 열심히 일해서 10억을 모은 사람이 그 돈으로 원룸이 10개 있는 건물을 샀다고 하자. 원룸 하나에 월 50만원씩 세를 놓는다면 그는 매년 6000만원, 20년이면 12억을 받아서 ‘건물값을 뽑게’ 된다. 하지만 건물은 여전히 그의 소유이다. 그는 자기가 저축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놀고먹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식에게 건물을 물려줌으로써 여가를, 즉 시간을 물려줄 수도 있다. (반면 그 원룸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은 집세를 내기 위해 추가로 일해야 한다. 그가 시급 6000원을 받는다면 매달 83시간20분의 추가 노동이 필요하다. 그는 매달 자신의 시간에서 83시간20분을 떼어서 집주인에게 주고 있는 셈이다.)

엔데 역시 시간이 화폐의 형태로 축적된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은 얼어붙은 꽃의 형태로 거대한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 회색도당은 이 꽃잎을 말아서 담배처럼 피운다. 이 얼어붙은 시간의 꽃잎은 돈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회색도당은 금융자본의 의인화일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 회색도당의 꾐에 쉽게 넘어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다수의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목돈을 모은 뒤에 그 돈을 굴리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목표는 드물다.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모모>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만년의 엔데가 왜 화폐의 문제, 특히 ‘이자가 붙지 않는 돈’이라는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가와무라 아쓰노리, 그룹 현대 지음, <엔데의 유언>참조). 회색도당과 싸우려면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또한 화폐의 본질에 대해 대담하게 사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시간을 재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화폐가 나타내는 것, 화폐를 통해 교환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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