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율법을 완전히 지킨자나 그 율법을 성취한 인간이 십자가의 주인이신 예수외에는 전무후무하다고 가정한다면 (만약에 있다면 그 예를 올려주시기 바람) 그러면 십자가 이전에 주신 십계명 중심의 의문의 율법은 왜 주신것인가? 라는 질문이 있어야 하고
그럲다면 십자가 이후에는 새계명이라는 단어로 왜 다시 계명을 주셨는가? 라는 질문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단의 속삭임은 두가지 속삭임이다.
첫째 속삭임은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길은 이 율법을 지켜서 되는 길이라는 선악과적인 유혹이고
둘째는 그것을 따먹은 후에는 그렇지만 아무도 이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국 사기를 친거야 라고 고발하는 이중적 유혹이다.
하나님의 속삭임도 이 두가지이다.
첫째 속삭임은 율법으로는 누구도 나를 닮을 수 없고 누구도 영생에 이를 수 없다. 예수가 올때까지 그냥 두어라 (히 11장-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믿음)
둘째 속삭임은 이 예수가 오면 율법을 완성하고 그가 이룬 율법의 완성으로 죽어있는 첫째아담의 후손들을 살려주는 영의 씨가 되었고 그 씨가 떨어져 썩는곳마다 똑같은 영생의 열매가 달리리라는 속삭임 즉 복음이다.씨가 땅 (육신)에 떨어져 썩는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
믿음의 과정이다. (갈바를 알고 나아가는 믿음)
요한복음 1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앞으로 성령이 오시면 세가지 독특한 일을 할것인데 그 중에 하나가
"이 세상 임금을 심판하는 일" 이다.
그 심판이란 사단의 목을 조르거나 천년 감옥에 가두거나 또 참수를 하는것이 아니고
그가 주장한 두가지 속삭임에 대한 우선적 심판이다.
지구를 창조하시고 동시에 선악과를 마련하신 경륜의 궁극적 목적에는 사단의 잘못된 고발을 온 우주 앞에서 공의로 심판하기를 원하신
계획이 있기 때문이고 뱀으로 하여금 배로 다니고 또 흙 (원어로 아다마)을 먹게하는 상징속에는 그 사단을 우주에 풀어놓지 않고
오직 지구에만 심판때까지 한정시키는 계획이 있는것처럼 그렇게 읽혀진다. 뱀은 흙을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다. 흙이란 성경에서
지구와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단에 대한 일차작인 심판은 그가 속삭인 잘못된 주장에 대한 심판이다.
그 심판속에 흙으로 표현되었던 사람의 심판이 포함되지 않고 다만 사람이 그 십자가의 기능과 능력과 사랑을 믿지 못할 때그 믿지 아니함을 심판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 이전에 있었던 죄는 딱 두가지뿐이다. 사단이 속삭인 그 두가지 유혹에 동참한 죄.
1. 지켜서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
2. 아무도 (십자가 까지도) 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불신
그러나 십자가 이후에는 죄가 딱 한가지 뿐이다. 십자가를 믿지 아니하는 죄!.
1.십자가의 모든 능력
2. 십자가의 모든 사랑
3.십자가의 모든 성취
4.십자가의 모든 용서
5.십자가의 전적인 은혜
6.십자가의 새로운 생명
7.십자가의 새로운 안식
십자가 안에 완성과 성취와 구속과 성화와 온갖것 (모든것)이 있음을 믿지 아니하는 죄가 계속되면 사단을 유황불로 멸망시키는 최후의 심판속에 그 무리들도 함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9장에는 아래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전에 입었던 속옷과 겉옷의 이야기다.
속옷은 고운 베로 된 천을 가지고 통으로 짠 옷이어서 찢어지지가 않는 옷이고
겉옷은 세마포로된 굵은 베옷이며 죽음의 옷이며 찢어질 수 있는 옷이다.
속옷은 당신의 생애와 마지막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신 고운 베옷의 삶과 죽음이며
겉옷은 그것을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은혜와 복음이며 사복음이며 사방으로 뻗어가야할 기별이다.
십자가에 예수를 못박은 자들이 가져야 할 은혜요 새로운 생명이요 영원이다.
여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한 자들은 읽을 자격도 없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분의 속옷과 겉옷이 나의것이 된다는 사실도 믿는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에 다시 주신 예수님의 새 계명은 그런 의문의 율법이 아니다.
이제는 성령의 법이다.
성령의 법이란 예수에게로 우리의 생애를 이끌어가는 법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에 새겨진 것이어서 그 성취가 전에 그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 성령의 법에 들어간 자는 지키려고 애쓰지 않는다.
성경 어딘가에는 이 법이 새겨진 후에는 하나님을 알라고 하지도 않는다고 되어있다.
이 법에 들어간 자는 온유하다. 긍휼이 여기는 자다. 이미 마음이 청결하다.
모든것을 참으며 모든것을 견디며 모든것을 바란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애쓰지 아니한다.
결론이다.
십자가 전에 준 시내산의 율법은 사단을 결박하려는 심판의 올무였다.
당신의 백성을 골탕먹이려고 내놓은 시험이 아니다.
그것의 성취가 십자가이다.
이제는 새로운 계명이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것이며 동시에그 능력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노동에 들어감이 아니요 그분의 안식에 들어가는계명이다.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일이다.
사단을 심판하기 위해 주었던 그 계명이 성취되고 이제는 사단의 올무에 갇힌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서 세운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새계명이며 새 언약이다.
그래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아들 즉 영생의 첫열매가 우리 생애속에 떨어져서 썩고있는지를 점검하기 바란다.
그 썩음이란 나의 육으로는 아니되고 다만 하나님의 영으로만 된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그것도 모르고 그때도 지금도 지키는 일에 혈안이 된 자들은 그 심판을 자초하는 자들이다.
율법의 졸업이란 그런 의미에서 나온 말일 뿐이다.
율법의 폐기란 또 그런 의미에서 생긴 말일 뿐이다.
십자가 때문에 일어난 이일을 우리가 어찌하랴
그 사실을 성경에 쓰셨으니 우리가 어찌하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실 율법이 십계명이다 아니다 라고 이리저리 공굴리기를 하지 아니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또 성령하나님이 바로 율법이요 계명이라는 이상한 공 굴리기도 아니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