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글을 읽으면서
선린중학을 다니다가 부모님이 박달재로 입산을 하는 바람에
나와는 나이 차이가 있지만 동창이 되었던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그럭저럭 한 이년정도 까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도미후에 신학을 해서 목사까지 한 친구
순전히 이건 내 생각이지만 재림교인이라면 어느누구도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는다거나 예수님의 재림이 없다고 여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만
기다림의 방식이 문제인것 같습니다.
초림을 기다려 보지 못한 사람이 재림을 어떻게 기다리는 것일까요?
사건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나를 구속하고 사랑해 주신 분) 을 기다리는 기다림이라면
기다림의 이유가 더 분명해야합니다.
초림은 역사적으로 지나간 사건이지만 개인의 구주로 오신 예수는
지금도 우리속에서 게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사도바울의 간증속에서 그는 날마다 죽는다는 십자가의 사건에 더 집중하고 있으며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는 말에서 그에겐 초림의 사건이 더
강조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삼십여년전에 먼저 이민을 간 지금의 아내가 사년만에 다시 한국으로
나와 결혼을 한후에 미국으로 같이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다시 나에게로 오기전에 우리는 이미 사년이라는 공백을 넘어서는
서로간의 애정과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미 미국에 적응이 되고 미국에서 공부한 소위 전문인 출신들과
결혼하기를 아내의 부모들은 바랐지만 아내는 나에 대한 사랑과 약속을
더 우선했기 때문에 우린 다시 만나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부부로 살게 된
것입니다.
율법과 교리는 사건을 기다리게 하지만
복음과 사랑은 사람을 기다리게 합니다.
율법과 교리는
죄를 용서받는 일로 닥아서지만
복음과 은혜는
죄인을 용서하는 일로 우리에게 닥아 옵니다.
우리는 날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날자를 기다리는 일에는 율법의 준수나 행함이 항상 염려스러울 것입니다
사람을 기다리는 일에는 그분에 대한 믿음이 염려스러울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 있는 곳에서 또 시간대에서
사랑과 약속을 믿고 지키는 삶이라면
그것이 바른 기다림입니다.
사건이나 날자로 선동하는 일에
흔들리지 마시고
사랑에 흔들리고
은혜에 흔들리고
약한 믿음에 흔들리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각자의 믿음이 자라는 곳에서
그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날은 "두럽고 떨리는 날"이 됩니다.
그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믿고 사랑에 감동한 자들에게는
그날은 결코 두럽고 떨리는 날이 되어선 안됩니다.
그리고 결코 도적같이 임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말세를 준바하는 힘은 오직
그분에 대한 믿음 뿐입니다.
이것 믿으시나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우리가 주의 오시는 재림을 기다리는 이유는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 입니다.
하루하루 주님과 동행하면서 지내면 되는것이지 그날을 기다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것은 모순 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그 관계가 더욱 깊어 질 수록 우리는 재림을 더욱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사는것은 주님 오실때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고자 하는 소망때문 입니다.
재림의 소망은 우리의 현재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주며
재림의 기별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재림은 재림성도의 오랜 염원의 성취 입니다. 오랜 세월 기다려왔던 주님의 다시오심은 온 지구의 염원이며
온 우주의 염원입니다.
"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우리가 현재 당하는 모든 고난을 능히 견디고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기 때문 입니다.
들판에서 자라나는 소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광의 재림이 이르러 올때에 그 소들도 썩어짐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 입니다.
재림은 온 인류뿐아니라 모든 동물계와, 식물계와,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사건 입니다.
재림은 이 지구를 죄에서 다시 회복하시는 긴 터널을 지나 일곱째날에 안식하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엿새동안 이 지구를 다시 재창조 하시고 이제 여섯째날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이제 참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재창조되는 일이 이루어 질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안식에 들어가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이땅에서 은혜의 왕국에 들어가야 할것이며, 그 은혜의 왕국에 들어간 자들이 결국 영광의 왕국에 들어가게 될것입니다.
재림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모두 헛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이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재림은 바로 부활의 사건 입니다. 첫째 부활의 사건 입니다.
우리의 썩어질 육신이 불가불썩지 아니할 몸을 입는 사건 입니다.
우리의 궁극적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인데 그날을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영광의 재림은 우리가 염원하는것보다 주님께서 더 염원 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만찬을 하실때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주님은 재림 하실때까지 유월절이 돌아와도 그 새언약의 상징인 떡과 포도즙을 드시지 않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먹을 수 있을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간절하신 심정을 우리는 헤아려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이것이 주님의 심정 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학수 고대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