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법원 3부는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故 박노수 교수와 故 김규남 의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달 대법원 1부는 이른바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무죄 확정 판결 내린 바 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일으킨 간첩단 사건이 속속들이 조작임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67년 재선에 성공하고도 장기집권을 위해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치려고 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1967년 6월 8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헌이 가능한 2/3 이상의 의석을 획득하려고 온갖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6.8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 시위가 폭발하자 박정희 정권은 6월 16일에 30개 대학과 148개 고등학교를 임시휴업 시켰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1967년 7월 ‘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여 공안정국으로 국면을 전환했다. 1969년 3월까지 동백림 사건에 대한 재판을 완료했는데 이때 2명을 사형 집행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씨도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동백림 사건으로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 정권은 곧이어 공안사건을 발표하는데 바로 이 사건이 ‘유럽 간첩단 사건’이다. 1969년 4월에 발표된 '유럽간첩단 사건'은 박정희 정권하의 대표적인 공안조작사건이다.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된 박노수 교수와 김규남 의원은 도쿄대 동창이었다. 이들은 1960년대 유학시절 동베를린과 평양에 가서 노동당 입당, 공작금을 받고 간첩 활동했다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남산 대공분실로 연행된 두 사람은 고문과 협박, 폭행을 당했고 허위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증거도 없이 고문에 의해 간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같은해인 1969년 9월 야당과 국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3선 개헌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장기집권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들의 사형 선고가 확정된 후 1971년 4월 대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 이들을 사형시킨 박정희 정권은 곧이어 ‘10월 유신’을 선포한다.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연임 제한을 없애서 몇 번이고 대통령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영구집권의 길을 만들었다.
2013년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 영장 없이 체포돼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며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또한, “과거 권위주의 시절 법원의 형식적인 법 적용으로 피고인과 유족에게 크나큰 고통과 슬픔이 됐다.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29일 대법원 재판부도 “피고인들에 대한 재심 대상 공소사실에 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봐 이를 유죄로 인정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애초 간첩이 없다는 진실이 43년만에 법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명을 달리한 두 고인의 피맺힌 한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단 말인가.
박정희 정권은 무고한 국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해 정권을 유지한 살인정권이다. ‘국가 안보’를 지킨다는 명분은 거짓 선동이고 그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앞세운 졸렬한 파시즘일 뿐이다. 하지만 독재에 부역했던 자들이 처벌은커녕 아직도 부와 권력을 유지한 채 우리사회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권력의 실세'라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박정희 독재정권의 중앙정보국 대공수사국장이 앉아 있지 않았나.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 지금이라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 본 사건의 판결을 교훈삼아 정권이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무고한 국민을 희생시킨 공안 사건, 종북몰이 없는 새해를 기대해본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