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에틀의 어느 교회처럼 단체로 가진 못했어도 삼삼오오
국제 시장을 다녀온 교우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도 가야한다는 생각
나도 가고싶다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의 결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언제 누구랑 갈것이냐만 남았다.
아내가 추천하는 두명의 교우와 내가 추천한 두명의 교우 이렇게
여섯이 오후 네시 사십오분의 상영실로 들어섯다.
벌써 자리가 다 차버리고 거의 맨 앞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약간
쳐들고 보게 되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이북출신의 아버님과
함께 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감추고 들어섰는데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나도 모르게 미군 화물선 빅토리아를 타기위해
숨차게 기어 오르게 된다.
서독광부의 실태를 어느정도 처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시카고엔 서독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짝을지어 살다가
시카고로 이민을 오신 분들이 많은데 아마도 그분들이 영화가
시작되자 얼마있지 않아서 훌쩍거리는 분들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슬프다 해서 그런줄 알았지만 하도 고생길 비슷하게 거쳤던 나에게
주인공이 겪는 그정도의 고생은 내 감성을 건드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막순이를 만나는 장면 오른쪽 귀 뒷부분에 점하나를
찾아낼때는 이미 내 두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양볼을 타고
진득하게 젖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끝부분에서 영자와 함께 바다를 내려다 보며
파독광부로 일하면서
월남에 민간 군속으로 일하면서 지켜온 목숨같은
그 가게(꽃분이) 를 팔자고 하는 덕수의 제안 그리고
그 이유가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버지가 이제는 기운이 없어서 우릴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그 말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거야"
라는 말이 한번도 나오지 않고
덕수의 마음에 늘 살아계셨는데 이제 그분이
돌아가신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기운이 없어지신 것이다.
눈앞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무덤에 묻어놓고도 십년 이상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시던 어머님의 가슴처럼
한국인의 가슴에는 실종이란 죽음이 아니고 언제나 가슴에 생존하는
기다림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세대의 가난한 달동네지만
덕수가 아직도 손을 잡고 사는 어머니와 가족
또 그가 피난시절의 어린시절부터 함께 키워낸 우정
달구 (나도 탐이나는)가 있었고
또 전쟁만큼이나 고생스런 현장에서 만난 이쁜 아내 영자와
마지막까지 함께 기억의 바다를 내려다 보는 동행
그런것들이 불행과 행복이라는 리듬으로 잘
짜여져 추억의 강이되어 흐르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덕수의 그 모든것에 내 나름의 것들을 여기저기
섞어서 생각해 보니 내 인생도 덕수의 그것처럼
한편의 드라마가 된다.
1975년 3월 입대하면서 월남을 가고 싶었으나
그때 이미 철수가 시작이 되어서 이루지 못한 꿈.
그냥 헤어지기 싫어서 들린 소공동 순두부집에서
우린 오랫만에 영화로 인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건질 수 있었다. 그중에는 피난온 사람과
국제시장을 훤히 아는분이
있어서 더 좋았다.
강츄!
my brothers and sis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