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보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숨지시기 일주일 전,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엄마, 나 설교하러 가야 해. 엄마는 부활의 소망이 있지만 내 설교를 들을 사람 중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을 수 있어. 그러니깐...”
“그래야지... 내 걱정을 말고 어여 가.”
나는 병원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문을 닫고 공항으로 향하려는데 막 거의 닫혀 잠기려는 문틈으로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실낱같이 남은 문틈으로 어머니의 눈길을 본 것입니다.
걱정 말고 가라고 하시고는 정말 가늘디 가는 공간에 비친 아들의 눈을 맞추던 모정...
내 무정한 손은 그 애절한 눈에 문 틈새마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난 그 문을 수억 만 번도 더 열었습니다.
열어도, 열어도 다시 닫히고 마는 그 문을 나는 지금도 열고 있습니다.
자태가 아름답고 고운 분이셨는데...
우리 5남매를 홀로 기르시느라 참 많이도 억세어 지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셨던 그 일은 내겐 가장 성스럽고 고귀합니다.
어머니는 내가 크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조그만 빡빡머리 때 그분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죠.
난 내가 그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자식을 낳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나를 어린아이처럼 대하셨습니다.
40을 넘긴 장남인데도...
자식의 성장기를 놓쳐버린 모성이 어머니의 눈을 멀게 해 나를 자꾸 어린아이로 보게 한 것 같습니다.
7년 전 오늘,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셨습니다.
성장기 모성결핍 증세를 가진 나를 버리고 엄마는 너무 일찍 내 곁을 떠나셨습니다.
2011. 7. 12.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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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있는 엄마에게(2004. 7. 12)
엄마,
나 종오야.
그러고 보니까 엄마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네.
내가 엄마를 못 잊어서 쓰는 거야.
예수님 오시면 그때 읽어봐.
내가 예수님한테 카스다 틀어달라고 할 테니까...
엄마,
나 지금 엄마 생각 많이 나.
지금도 어디 살아계실 것 같은데...
엄마,
그런데 왜 그렇게 빨리 떠난 거야?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엄마의 엄마도 아직 살아계시는데...
아직도 나 챙겨줄 것도 많이 남았고...
엄마,
나 때문에 속 많이 썩었지?
엄마는 좋겠다.
더 이상 나 같은 자식 안 봐서...
맨날 걱정하시더니마는...
엄마,
나는 엄마 죽기 전에
손도 만져드리고 싶었고
안아드리고도 싶었고
사랑한다고도 말하고도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 가슴이 아파.
내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라,,,
그러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엄마,
엄마랑 헤어질 때
문틈이 실낱같이 남을 때까지 나를 쳐다보셨던 거
너무 생각나서 가슴이 아파.
엄마 죽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었어야 했는데...
엄마 미안해.
엄마,
엄마는 그동안 내게 엄마노릇 정말 잘했다.
예수님 재림할 때
엄마의 평가서를 받으면 내가 100점이라고 써줄 건데...
상장도 줄 거구...
**상장**
장기순
귀하는 천하에 불효자식을 만나서 엄마의 의무를 넘치게 완수하였으므로 이 상장을 수여함.
불효자 협회 명예회장 종오가(직인없음)
부상(副賞) : 부활하면 종오와 영원히 같이 살기.
엄마한테 한 번도 말 안했던 것
지금 말 할 테니 잘 들어봐.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종오님의 글을 읽고 소리없는 눈물이 제 빰을 적십니다.
너무나도 불효막심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요
일제와 6,26 보리고개를 넘어 지지리도 가난하던 세월에
자식들을 위해선 입안에 것도 다시 뱉어
자식입에 넣어주시던 분들의 삶을 생각할때
불효자식 아닌자 누가 있겠습니까.
불효자는 웁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여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