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에 올려놓은 글이다. 계명 또는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모든일을 항상 하지 아니하는자는 저주아래 있는자"라는 의미를 한번도 새겨서 생각해보지 못한 자들 같이 주구장창 날뛰는 잡초들의 무례함이 민초의 고요를 뒤집고 무슨 황건적같이 이마에 노오란 띠를 띄고 성난 황소같이 달려 드는 모습을 보고 우리교회의 현실과 앞날이 심히 염려스럽다. 그냥 토론의 수위를 넘어서서 이제는 돌멩이질 내지는 욕지기가 귀에 걸려있는듯 험악한 분위기가 감돈다. 계명과 율법을 주신분도 하나님이시지만 그분 앞에서 "아무도 울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것이 분명하니" 라고 선언하는 사도바울 부터 돌로 치고 김 아무개에게로 와야 순서가 맞는것이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것이 아니고 오히려 율법보다 먼저 주셨던 그 언약이 믿음에 속한것임을 말하고 그 언약보다 "사백사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이 하지 못하리라" 고 덧붙이는 것이다. 그리고는 복음의 주체가되는 분께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는데 그가 여러군데의 성경에서 그분 안에 거하기를 포도나무에 붙어있음같이 붙어있으라는 방법론을 같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또 이 잡초들같이 계명의 주체가 되려고 은혜 또는 복음 운운하면서 그것을 끝내 죄인은 지키지 못하는 또 다른 저주의 광야로 자처해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거기엔 모세가 기다리고 또 예언의 신들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 똑같은 단어인 율법과 계명을 이야기 하지만 그 방법이 다르다는 말이다. 마치 이스라엘이 저주와 축복의 산사이에 서 있던 그날처럼 율법과 계명을 놓고 접근하는 방법사이에 저주와 축복의 갈림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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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믿음이 먼저이고 믿음후에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순리인 것입니다. 이것을 자꾸만 율법을 폐하거나 불순종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하려고 하는게 문제입니다. 율법의 본질도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도 믿음도 이해못하는 사람들이 말은 함부로 잘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