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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23 


 

(그런데 우리 일행은 시간을 맞추어 배에 잘 탔는데

다른 목사 몇 명이 하와이와 일본의 시간이 다른 것을

몰라 배를 놓치고 말았다. 후에 알고 보니 이 분들은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올 수밖에 없었다 한다. 연재#22 끝부분)

 

 

1. 세계 대총회 참석과 육이오 동란-제 2 부

 

 

샌프란시스코까지 오는데 배로 13일이 걸렸다.

배에서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아름다웠다.

설명을 들으니 샌프란시스코를 화잇칸투리(White Country)라 하여

집집마다 흰 빛깔을 칠해서 너무 보기가 좋았다.

촌계관청격(村鷄官廳格-촌닭이 큰 관청건물을 놀램)도 분수가 있지,

일본 요꼬하마 항구를 보고 그 규모에 놀랐었는데 상항은

몇 배가 더 큰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세관 검사를 위해

사람들은 짐을 찾느라 야단 법석 이었다. 알고 보니

영어로 자기 성(姓)을 따라 가야 했다. 그러니 박창욱 씨는 P로,

나는 C로 가야했고 다른 분들도 자기 이름을 따라 갔다.

영어를 모르는 나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나는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 다니던 경험이 있어 내 명함을

영어로 만들어 왔는데, 영어를 못하는 나는 명함을 내주니

“당신 목사냐”고 묻기에 “Yes!"하고 대답을 했다.

“대총회에 오는가?” 묻기에 또 “Yes!" 했더니 조사는커녕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고 분필로 찍 긋고 내주어

세관 검사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세관을 먼저 나온 나는 이제 “이 복잡한 항구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하면서 걱정을 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닥터 루가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다른 전도부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은 아직 한 분도 보이지도 않는데 닥터 루는

우리가 걱정 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이렇게 선창까지

나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우리의 양복까지

마련해 준 것도 나의 심금을 울렸는데 상항 항구에서 보여준

이 분의 배려는 “앞으로 나도 이 분의 정신으로 사역을 하고

교인들을 섬겨야 하겠다!”는 생각과 결심을 갖게 했다.

닥터 루는 나에게 “정 목사, 영어를 못 하는 줄 알았더니

아주 잘 하시는 모양입니다!”라고 하기에 그 이유를 물은즉

“영어를 꽤 하시는 박창욱 씨도 아직 못나왔는데

이렇게 세관검사를 빨리하고 나온 것을 보니 영어를

잘 하시는 모양이지요?”하면서 농담을 했다. 박창욱 씨는

가방을 다 검사받느라 한 시간정도나 걸렸다. 박창욱 씨는

“자기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영어를 모르는 정 목사는

얼마나 오래 걸릴까?”하고 걱정을 했다가 내가 이미

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기에 설명을 해 주었더니

“역시 경험이 중요하군요!”했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일본압박 밑에서 고생을 하던 나는, 성직자를 대하는

이 사람들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만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닥터 루의 자상함은 여기서 끝나지를 않았다.

다른 나라대표들은 호텔방을 찾느라고 야단인데

닥터 루는 우리를 이미 예약해둔 30층 되는 “낸시”라는

고급호텔 5층으로 인도했다. 역시 의사라 고급으로 행동한다고

생각 되었으나, 알고 보니 대총회규정에 의해 대표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금액으로 고급스러운 호텔을 좋은 가격에

미리예약을 해 두어서 감사했다.

호텔비는 하룻밤에 3불 20전이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대총회장소까지 걸어 다니기에 알 맞는 거리에 있었다.

자비(自費)로 간 방례두 씨는 값이 조금 싼 여관에 들었는데

하룻밤에 70전씩 한다고 했다. 나는 방례두 씨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 분이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까지 와서, 같이 온 사람들이

고급호텔에 들면 자기도 휩쓸려서 그렇게 할 것 같은데,

기분에 의해 낭비를 하지 않는 그분의 절약정신에 존경심이 갔다.

닥터 루는 우리를 호텔 직원들과 호텔 보이(Hotel Boy)에게

일일이 소개하고 호텔규칙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또 우리를 데리고 대총회 장소까지 한번 걸어가면서 우리가

왕래할 길에 있는 중요한 표식들을 일일이 지적해 주어서

길을 잊지 않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목사인 나도 교우들에게

이렇게 자상하게 하지는 못했었다. 많은 것을 나는 이 분에게서 배웠다.

 

 

나는 박창욱 씨와 “내일부터 대총회가 시작을 한다하니

그전에 상항영사관을 찾아가 한국소식을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의논하여 영사관을 찾아 갔다.

총영사는 주영한 씨라는 사람인데 이승만대통령과

친하신 분으로 국제결혼을 하신 분이었다. 우리를

아주 환영하면서 전해주는 고국 소식은 뜻밖에도

한국 전체가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을 고국에 두고 온 우리는 마음이 답답하고 걱정만 앞섰다.

우리의 답답해하는 모습을 본 주 영사는 “내일부터 총회가

시작한다니 오신 김에 가까운 공원에 가서 기분 좀 푸십시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하며 자기 차에 우리를 태우고

그리 멀지 않은 공원으로 갔다. 공원 들어가는 길에

차 소리가 나자 길 좌우편에서 수십 마리의 다람쥐가 나와서

우리를 맞았다. 주 영사는 준비해간 다람쥐 음식을 뿌려주니

다람쥐는 두려움도 없이 양식을 받아먹었다.

고국에서는 볼 수도 없는 진풍경이었다. 공원내부도 얼마나

정돈이 잘되고 깨끗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나라도 빨리 이렇게 되었으면”하는 바람이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어떤 큰 나무는 그 수한(壽限)이

3천 몇 백 년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노아 홍수를

연상케 했다. 돌아오는 길에 주 영사에게 신문을 좀

보고 싶다고 했더니 일본사람이 발행하는 “나부신보”라는 것을

사서 주었다. 그 신문에 한국전쟁 소식이 꽤 자세히 실려 있었다.

그림도 그려져 있는데 북쪽군사가 내려오는 것은 검은 줄로,

남한의 방어선은 흰 줄로 표시가 되어있었는데 북쪽 군이

벌써 수원을 지나 천안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천안 다음이 대전이니 대전에 살고 있는 식구들의

안부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일로 대총회에서 받아야할

은혜를 놓치지 않고 다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제 47기 안식일교회 세계총회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어떤 공회당 같은 곳에서 개최되었는데 공회당의 크기는

나의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 얼마나 커 보였던지!

첫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듣기에는

약 2만 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대단한 모임이었다.

불원하여 허다한 무리가 구원 얻을 때는 얼마나 그 규모가

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층에 올라와 내려다보니

마치 꽃밭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생겼다.

1950년이니까 약 40여 년 전인데, 당시에 유행을 따라

여자들이 모자를 썼는데 빨강, 파랑, 흰색, 검은색 등

각종 색깔에다가 모자에 각종 색깔의 깃털을 달았으니

커다란 꽃밭에 온 듯했다. 시작을 하는 모든 순서도

이해는 잘 못하겠지만 그 모습만 보아도 은혜를 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상항주재 우리나라의 총영사가

축사를 해준 것도 매우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답답한 것은 통역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박창욱 씨가

통역을 좀 해주면 좋겠는데 별로 말이 없었다. 내가 보아도

성경말씀 보다는 예언의신을 많이 인용하는 것 같아 통역하기에

매우 힘 들것이라 생각은 되었다. 그래도 기다리다가 할 수없이

“박 선생! 통역 좀 해 주시오”라고 부탁을 했더니 원래 정직한 분이라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영어를 좀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미국본토인들이 영어를 하는 것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정직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고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너무 답답하여 대총회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한 곳에서 반갑게도 일본말을 하는 것이 들리기에

그리로 가니 일본사람들이 약 100명가량 모여 있는데

일본사람들도 영어를 모르니까 노자끼라는 일본인목사가

통역도 하고 따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나는 대총회 전 기간동안 이곳에 합류하여 여러 가지로

은혜를 받았다. 몇 번 참석을 하자 노자끼 목사는

내가 한국 목사이지만 일본말이 통하자 매우 반가워하며

자기 집으로 초청을 했다. 그래서 박창욱 씨와 같이 갔는데

노자끼 목사는 미국 온지도 오래되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 댁에 가니 일본에서

같은 배를 타고 온 김상칠 씨의 아들 김영욱 씨도

초대되어 와 있었다. 우리가 대총회에 참석하는 동안

이 댁에 몇 번 청함을 받았다. 일본인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런 경험을 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했다.

 

 

한 번은 주 영사의 집에도 초청을 받게 되었는데 주 영사의

서양인 아내가 동양인인 우리들을 얼마나 반갑게 맞아 주는지

매우 감명을 받았다. 주영사의 말이 “한국동란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북한이 너무 빨리 내려와서

현재로는 승패를 말할 수 없다”는 섭섭한 말을 듣고

걱정이 많이 되었다.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 되었다. 그런데 주 영사의 부인되는 서양 여자 분이

우리가 방문한 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고국 분들 중에 당신네처럼

미국풍속을 잘 아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칭찬하는 말 같아서 감사하기는 한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금까지 고국에서 저희 집에 오신 손님 중에 우리 집 변소에서

대소변을 보고 나서 변기의 물을 틀어 대 소변을

내려가게 한 사람은 당신네가 처음이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으나 우리는 곧

무슨 뜻인지 깨닫고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시조사나 또는 선교사 사택이

모두 수세식 변소로 되어 있어 습관이 되어있었으나

고국에서 온 사람들은 수세식 변소에 처음 들어가

대소변을 보고 그냥 나오곤 한 듯 하다. 영사의 관저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대소변을 보았을 것이며

그 중 한 명도 물을 틀지 않고 그냥 나갔으니 그간 얼마나

이 서양 부인이 고생을 했을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대총회가 끝날 즈음에 나에게 잠시 설교를 하라고 해서

나는 마태복음 24장 14절의 말씀을 가지고 잠시 설교를

한 후에 한국동란을 위하여 잊지 말고 특별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마 한국동란을 생각하여

한국대표로 참석한 나에게 시간을 배려해 준 것 같았다.

대총회 폐회순서로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다 자기나라

풍습을 보여주는 순서가 있었다. 약 200여 나라의

대표자들이 자기나라의 고유한 의복이나 풍물을 가지고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순서를 진행하였다. 우리도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이미 그 얘기를 듣고 준비하여 왔기에 한복을 입고

방례두 씨 등과 함께 장고와 태극기를 가지고 나갔고

원륜상 목사도 장구를 치면서 함께 등단하여

다 같이 아리랑을 불렀다. 가사를 조금 바꾸어 “복음을 전하다가

가버리면 십리도 못 가서 발 병나네!”라는 가사 내용으로

아리랑 노래를 불렀다. 총회선거를 통하여 대총회장이

바뀌었는데 우리는 전 대총회장에게 선물로 준비해간

유기를 전하니까 신문기자들이 와서 전 대총회장이

선물 받는 것은 특이한 일로 감동적이라 하며

느끼는 바가 커서 신문에 낸다며 사진을 찍는 등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한국대표만 전임 대총회장에게

선물을 주는 순서를 가졌으니 말이다.

 

 

대총회가 끝나자마자 주 영사는 우리가 한국대표로 왔다고

다시 식사에 초대를 했다. 식사 후에, 주영사가 우리를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제 대총회도 끝났으니 가시기전에

샌프란시스코 지역 구경이나 좀 하십시다.”하면서 자기부인에게

“이분들이 한국으로 곧 돌아 갈 지도 모르니 드라이브나

시켜드리면 어떠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러자 주 영사의 부인이 참 감동적인 대답을 했다.

“지금 고국에서는 전쟁이 나서 죽는다, 산다 하면서

전쟁이 어떻게 될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드라이브를

즐길 수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나는 이 서양부인이

한국 사람에게 시집을 와서 한국백성과 나라를

저만큼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동포들은 그동안 서로

다툼이나 일삼다가 지금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하고 있으니

참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주 영사의

부인에게 한국전쟁의 형편이 많이 좋아 지면

그때 드라이브를 하자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나는 대총회 기간동안 계속 일본신문을 구해서 보는데 거기에

한국 소식이 실리곤 했다. 신문을 통해 한국전쟁의 어려움을

보면서 계속 걱정을 하니, 하루는 닥터루가 묻기를 “대전 이전에

강이 있느냐”고 묻기에 “금강이라는 강이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걱정을 하지 말라. 강만 잘 지키면 더 이상 북한이

진격하여 못 들어 갈 것이라”하기에 나도 동감이 되어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신문을 보니 7월 20일 대전이

함락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차! 이제는 내 아내와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걱정을 하니 닥터 루는 “당신이 왜 아이를

그리 많이 나서 걱정을 하느냐”고 해서 씁쓸히 웃어넘겼다.

 

 

 

2. 미국 겉핥기


 

대총회가 끝나자 미국구경을 못한 외국대표들은 미국시찰을

시켜준다고 했다.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인도하는데 우리일행은

나와 박창욱 씨와 확스라는 인도네시아 사람 등 몇 명이고

인도자는 인도네시아 합회장으로, 이름은 엠미니시라는

미국사람 부부이었다. 두 차로 나누어 가는데 오레곤주(州)로 해서

와싱톤주를 경유하여 중부지방인 시카고를 거쳐

뉴욕과 와싱톤디씨까지 여행하도록 예정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동란을 당하고 있는 식구를 생각하니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닌듯한 생각만 들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별로 많지는 않다. 운전은

미국인 엠미니시 부부가 한 차씩 맡아서 했는데,

이상하게도 어떤 때는 남편이 앞서 가던가 아니면

아내가 한참 앞서 가다가 어떤 갈림길에서는 서로

앞서간 차를 놓치고는 찾느라고 한참씩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길이 어긋나서 기다려도 다른 차가

오지를 않았다. 영어를 하는 박창욱 씨는 운전수와

다른 차를 찾으러 되돌아가면서 나보고 내려서 기다리다가

헤어졌던 차가 오면 세워서 기다리라고 했다.

내 땅도 아닌 곳에서 영어도 모르면서 그네들이

오기를 기다린 다는 것이 얼마나 걱정이 되는 일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혼자 서있으면서 “알지도 못하는 미국사람이 와서 여기서

무엇 하는가 물으면 뭐라고 하지?” 하는 걱정에서부터

“소변이 마려우면 어떻게 하지?” 하는 별의별 걱정을 하면서

얼마나 초조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땀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다른 차를 찾아 돌아왔다. 눈치를 보니 여행비는

대총회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식사는 가는 곳마다

교우들이 대접해주어 매우 감사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한 가족 삼아주신

기이한 섭리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여행이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고역이었다.

그래도 서부지역은 가는 곳 마다 일본신문을

볼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신문을 보니 부산지역

한 귀퉁이를 빼고는 모두 공산군에게 점령당한 것 같아

몹시도 답답했다. 공산군이 낙동강을 넘지 못하게 해달라고

얼마나 기도를 드렸는지 모른다. 다행히 낙동강은

넘지를 못하고 전투가 치열한데 미군 비행기들이 이 지역

공산군에게 얼마나 폭격을 많이 했는지 수없이 죽은 시체와

불타는 시체를 사진으로 보여 주는데 비록 공산군이지만

너무 처참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낙동강 전선에서 공산군이 더 내려가지를 못한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와싱톤주 시애틀에 도착을 했다.

여행 떠난 지 며칠 안 되었으나 우리는 한국사람이 몹시 그리웠다.

갑자기 박창욱 씨가 “목사님, 여기 씨애틀에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간난“이라는 여자 분이 와서 산다는데 한번 찾아봅시다.”라고 했다.

놀랍게도 그 분은 “간난”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성씨(姓氏)는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이 분은 우리교회학교인

동명학교를 나오고 당시로는 최고명문인 이화대학까지 나와서

이곳에 있는 분과 결혼을 하여 시애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박창욱 씨와는 옛날에 이웃에서 사셨다 한다.

“간난” 여사를 만나니 우리보다 이분이 얼마나 우리를

더 반가워하는지 마치 “천국에 가면 이렇게 반가워하겠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대접해 주고,

떠날 때는 눈물까지 흘리고 섭섭해 하면서

여행 중에 사용하라며 약간의 금전도 손이 쥐어 주었다.

지금도 그분의 환대를 잊을 수가 없다.


 

오레곤주와 와싱톤주 몇 곳을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보고

미국 큰 도시 중에 하나인 시카고까지 왔다. 시카고에서

동양인 두 명이 우리와 합류하여 여행을 계속했다.

그런데 이 미국인 합회장은 안식일인데도 계속 여행을 하기에

“교회라도 좀 찾아보자.”고 했더니 이분은 정말 우리를

어느 교회 문 앞에까지 데리고 가서는 “여기가 OOOO교회요!”하고

교회이름만 영어로 알려 주고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나겠다.”했다. 예배를 드리고 싶어 “교회라도 좀 보자” 했더니

정말 교회 건물만 보여 주고는 떠나는 것이었다.

인도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시간에 나는 인도네시아 교우에게

“내가 재림 교인이 된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이렇게 안식일을

지내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니 인도네시아 사람

확스씨도 “이런 안식일은 처음이라며 미국 사람의 안식일은

이런가 보다.”라고 해서 생각되는 바가 많았다.

확스씨는 “내가 그간 미국 총회에 여러 번 참석하려고

신청했으나 이 인도자가 못 가게 하였다.”하며 “이렇게

미국식 안식일 지키는 것을 안 보여주려고 그랬던 모양.”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 웃었다.

 

 

한 가지 잊을 수가 없는 일은 뉴올린즈에서 보게 된

옛날 흑인들을 사고팔던 노예시장이었다. 이곳에는

아직도 흑인 노예들을 붙들어 매던 쇠사슬과 노예시장의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보기에도 처참하고

몸이 으스스했다. 노예들의 생활모습과 노역을 하던

기구들이 그대로 다 있었는데, 곡식을 찧던 절구 비슷한

기구들과 또 우리나라의 맷돌 비슷한 기구를 보여주며

젊은 흑인노예여자들이 아이를 업은 채로 일하던

기구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 가면 아내들을

노예취급 하지 말자.”하며 맷돌이나 절구로 곡식을 갈던 일을

대신 할 수 있는 기계들을 하나씩 샀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새로운 것을 보아야 자신에 대해

생각도 하고 결심도 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럭저럭 와싱톤 디씨까지 왔다. 제일보고 싶은 것이

화잇 부인의 원고를 보관한 곳과 미국 대통령이 살고 있는

백악관이었는데 날자가 잘 맞지를 않아서 아무 것도 못 보고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 이곳에 원동지회 서기 쏘렌슨 목사

(후에 원동지회장이 됨)도 대총회에 참석했다가 와 있었는데

우리를 보더니 빨리 떠나라고 했다. 나는 박창욱 씨에게

통역을 하라고 해서 “지금 이곳에 와서는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으니 한 이틀간 더 머물러 화잇 여사의 서적보관소와

백악관을 보고 가겠노라!”고 했더니 이분이 한다는 말씀이

“나도 당신 네 나라를 여러 번 방문했으나 제대로 구경을

못했다”하면서 빨리 떠나가라고 재촉이었다.

전쟁 중이라 고국으로 당장 갈 수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재촉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 분은 운동선수처럼

목이 굵어서 우리는 “그 양반, 생긴 모양대로 꽤나

고집이 센 양반이구만!”하고는 할 수없이 뉴욕도 잠간 들려

엠파이어스테이트 건물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급하게 구경하고는

서부로 다시 돌아왔다.

 

 

서부로 떠나기 전, 쏘렌슨 목사는 우리에게 “아직은 한국으로

돌아 갈수가 없으니 박창욱 씨는 어디 가서 공부를 좀 하고

정동심 목사는 하와이로 가서 교회목사 일을 좀 하라”고 했다.

나는 “하와이에서 교회목사로 일을 하면 한국전쟁이 끝나도

곧 돌아가기가 힘들겠다.”라고 생각이 되어 “언어가 좀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도 박창욱 씨와 함께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

“우선 서부로 가있다가 다시 의논하자.”고 하며 서부까지

기차를 타고 떠나라 했다. 기차를 타고 서부까지 오는데

약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다른 것은 기억에 남는 것이 없고

럭키산맥을 굽이굽이 돌아가던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기차로 도착한 곳이 칼리포니아 주,

나성(羅城-로스안젤레스)이었는데 처음 온 우리는 어디로 갈까

하다가 일본말로 이름이 써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선교사들은 나성이 미국 내에서 나쁜 도시 중 한 곳이라

했었기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일본말로

의사가 통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러나 하룻밤을 지내보니

기차역 옆에 있는 이 호텔은 안전해 보이지가 않아 나성중심가에

여관을 다시 잡고 박 창욱 씨와 함께 길을 물어

화잇 메모리얼병원(White Memorial Hospital)을 찾아갔다.

그들은 처음 보는 우리를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 주는지

그 친절함을 꼭 배우고 가야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분들은 “닥터 루로부터 우리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며

닥터 루도 며칠 있으면 나성으로 올 것.”이라고 말해주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1950년도, 나성에는 한국사람 보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그런데 병원직원 한 분이 이 병원에 한국인여의사 한사람이 있다고

전해 주면서 안내를 해서 만나게 해 주었다. 그 여의사는

다른 교파에 속한 신도로서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비록 교파는 다르지만 이병원이 좋다고 해서 지금

견습하러 왔는데 “새로운 것도 많이 배우지만 너무도 친절해서

이국(異國)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라고 하면서 우리를 만난 것을

매우 기뻐하며 병원을 칭찬했다. 워낙 한국 사람이 귀할 때라

우리도 동포를 만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비록 미국이라 하나 우리 교회 병원이 다른 교파 사람에게도

문을 열고 받아 드리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며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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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6 53664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5451
2855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26 정태국 2012.03.03 1291
2854 오창준 의사 선생님께 드립니다 1 정통안식교인 2012.03.03 1251
2853 돈주고 안식 구입하기.. 6 김성진 2012.03.02 1634
2852 LA 향린교회 website 1 영화감독 2012.03.02 1923
2851 향린 교회 (LA Glendale 소재) 2012년 봄학기 성서학당 개강 file 영화감독 2012.03.02 2048
2850 달력문제 12 궁금이 2012.03.02 1294
2849 기도에 대하여 (1) 1 아기자기 2012.03.01 1138
2848 악자의 호주머니 털기 또는 국가 재산 털어 먹기 2 로산 2012.03.01 1159
2847 노아홍수 전 인간 1 로산 2012.03.01 1295
2846 무당과 예수 1 로산 2012.03.01 1612
2845 쪽 팔리려고 하는 천안함 로산 2012.03.01 1207
2844 28번 이혼한 뻔뻔한 목사, 그 이유 들어보니 `황당` 황당시추에이션 2012.03.01 1476
2843 Let's cry for this tears 2012.02.29 1035
2842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25 1 정태국 2012.02.29 1205
2841 삼위일체는 미신적 교리? 1 file passer-by 2012.02.28 1373
2840 '주로3040에게' (오창준 의사 선생님의 글) 2 정통안식교인 2012.02.28 1425
2839 교회를 걱정하시는 여러분의 고뇌에 동참하는 1人 1 민아 2012.02.27 1234
2838 목사님들에게 처음으로 써보는 쓴소리.. (수정) 9 김 성 진 2012.02.27 1743
2837 그 많던 촛불은 다 어디 갔나요? 기막힌 사람들 2012.02.27 1267
2836 투표로 神이 된 예수 6 돌베개 2012.02.27 3328
2835 [평화교류협의회] 기도와 독서를 통한 평화에 대한 성찰과 토론 file 평화교류협의회 2012.02.27 1147
2834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24 정태국 2012.02.26 1276
2833 교복 업체의 횡포가 이루 말할 수 없네요.. 달콤쵸코 2012.02.26 1177
2832 성경에는 - 왜 그렇게 오묘가 많은지요 ? (KK 님:) 1 민초 사랑 2012.02.26 1041
2831 겉과 속 로산 2012.02.25 1038
2830 “조중동 보도에 시민들이 분별력 갖고 권리 찾아야” 변화 2012.02.25 1083
2829 그 사람이 잠시 맛본 안식일교회 김주영 2012.02.25 1398
2828 성경의 구약과 신약의 변화된 문체 바이블 2012.02.24 1383
2827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웠니?? 1 김주영 2012.02.24 1370
2826 불현듯 생각나는 일 10 로산 2012.02.24 1191
»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23 정태국 2012.02.24 1288
2824 PRIORITY, If we have to fight!!! tears 2012.02.24 1148
2823 나는 불의에 침묵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7 필리페 2012.02.23 1430
2822 갸우뚱님의 정체는? 갸우뚱 2012.02.22 1031
2821 김주영님 글 관련입니다 4 유재춘 2012.02.22 1286
2820 교회, 벼락을 맞다 3 김주영 2012.02.22 1270
2819 선악과의 임상 결과 2 바이블 2012.02.21 1100
2818 32000년과 6000년 8 로산 2012.02.21 1267
2817 우리에게 남아있는 안식일 4 최안나 2012.02.21 1081
2816 서기호판사가 말하는 예수의 모습. 1 필리페 2012.02.20 1087
2815 또 한 사람의 안식일 교회 목사였던 사람이야기 5 로산 2012.02.20 1374
2814 이월에 남가주에선 무슨일들이 있었나요? 9 fm 2012.02.20 1272
2813 한 때 안식일교회 목사였던 사람이... 16 김주영 2012.02.20 2136
2812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22 정태국 2012.02.20 1109
2811 추억의 노래 섬마을 선생 2012.02.20 1112
2810 아담이 33세에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10 바이블 2012.02.19 1147
2809 안식일의 기원과 이유 및 목적 7 바이블 2012.02.19 1149
2808 성경을 조금알면 1 바이블 2012.02.19 1051
2807 나이롱 안식일 6 김주영 2012.02.19 1353
2806 喪家집의 개 공자님, 돌베개 2012.02.19 1121
2805 ▲ 꽃의나라, 향기의나라, 장엄한 화엄(華嚴)의 세계는 누가 세우나 ▲...《해월유록에서》 문 명 2012.02.18 1334
2804 사람 잡기 딱 좋은 날 4 김주영 2012.02.18 1267
2803 그냥 한마디님,성령이란 8 바이블 2012.02.17 1207
2802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21 정태국 2012.02.17 1340
2801 유전을 점령하라 2 로산 2012.02.17 980
2800 투서에 관하여 - 고 김관호 목사님의 자서전에서 발췌 (하문님께) 4 도우미 2012.02.15 2156
2799 ◐ 북두칠성(北斗七星)이 , 인간(人間)으로 오다 ◑...《"해월유록(海月遺錄)에서》 1 문 명 2012.02.15 1919
2798 - 후천 개벽(開闢)은, 어느누가 하나 -...《해월유록에서》 문 명 2012.02.15 1319
2797 '로폼'이란 말이 무슨 말임니까 ? 6 무식자 2012.02.15 3053
2796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20 정태국 2012.02.15 1172
2795 기도에 관한 가장 훌륭한 설교 하나 4 김원일 2012.02.14 3761
2794 안식교의 종말.. (수정) 김 성 진 2012.02.14 1454
2793 곽목사님 설교 속편 2 기다리는이 2012.02.14 1189
2792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19 1 정태국 2012.02.13 1243
2791 고한실씨와 다니엘 12 김민철 2012.02.13 1613
2790 인문적(人文的) 가슴이 없는 대통령 이명박 2 인문 2012.02.12 1230
2789 목사님! 교회가 평안하십니까? 6 필리페 2012.02.12 1423
2788 예언 바이블 2012.02.11 1065
2787 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18 6 정태국 2012.02.11 1466
2786 탁 까놓고 얘기해 보자 17 김주영 2012.02.1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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