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015.02.05 15:34

[삶과 문화] 팽목항

조회 수 24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삶과 문화] 팽목항

수정: 2015.02.05 20:46
등록: 2015.02.05 20:00

팽목항은 내 개인적으로 조금 사연이 있는 곳이다. 10여 년 전, (우리가 살다 보면 한번씩 그렇듯이) 인생의 어떤 기로에 서있었는데,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에 박혀있어 보았는데, 남들은 무언가를 곧잘 깨닫고 나오곤 하던 그곳이 나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달 만에 절을 나서던 날 스님이 물었다. “이제 집으로 가시나요?” 나는 대답했다. “길로 갈려고 합니다.” 스님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합장을 했고 나도 같이 따라 했다.



그곳에서 나는 남쪽으로 걸었다. 바짜야나(카마수트라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가 했다던 “네가 걷고 있는 것은 길이 아니다. 그것은 너의 발자국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고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린다. 천년 사찰의 고요함보다는 길 자체가 차라리 편하군, 이런 생각은 했었다. 아무튼 나는 종일 걸었고 밤이 되면 녹슨 마름모꼴 쇠창살에 커다란 분홍 꽃무늬 커튼이 있는 여인숙에서 자고 날이 새면 또 걸었다. 충청도를 벗어나고 전라북도를 지나 결국 도착한 곳이 진도 팽목항이었다. 그곳을 목표로 했던 것도 아니었다. 가다 보니 그랬다.


바닷가란 총 들고 지키는 국경보다 더 시퍼런 경계다. 경계란 돌아서는 것을 강요하는 곳이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남도석성까지 갔다 왔다를 되풀이 하다가 결국 바다를 건너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로도 몇 번 팽목항을 찾아갔고 그럴 때마다 나와 아무 상관없이 서있던 조도 주민들과 낚시꾼들을 바라보며 인생의 한 순간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지난 가을 다시 혼자 팽목항엘 찾아갔다. 그 동안 텅 비어있는, 오로지 내 개인의 장소였던 방파제에는 끝도 없는 노란 리본들이 혼령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눈앞에 일어나버렸기에 홀로 한숨이나 짓던 곳이 많은 이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장소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나는 슬펐다. 작가는 슬픔이나 고독 같은 개념어를 쓰지 않는 버릇이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슬프고 비통했다. 나에게 팽목항은 지난해 4월 16일 이전까지는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지난주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 다녀왔다. 아동문학분과에서 주관하는 ‘천 개의 타일로 만드는 세월호, 기억의 벽’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타일 하나하나에 그리고 싶은 그림과 원하는 문구를 적어 넣는 거였다.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다. 소설가 윤정모 선생도 이제는 늙어버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문구를 또박또박 적어 넣으셨다. 거리가 멀어 찾아오지 못하는 회원들은 문자로 보내왔고 그것을 아동분과 회원분들이 종일 구부리고 앉아 적고 그렸다. 나는 “우리가 믿는 것은 미움의 힘”이라고 적었다. 희망은 생활계획표처럼 무기력한 것이기 때문에.


듣자니 4ㆍ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도 하기 전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한 여당이 딴죽을 걸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무원들을 철수시키면서 특위 설립준비단이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는 것. 사무처 운영과 진상조사에 필요한 예산으로 산정된 241억원 규모의 예비비 사용을 두고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세금 도둑” 발언도 했다.


단원고 학생, 학부모들이 일반 시민들과 세월호 사고의 조속한 진상규명과 인양을 촉구하기 위해 20일간 도보를 하고 있는 중이다. 2월 14일에 팽목항에 도착할 예정이고 그 날 기억의 벽도 세워진다. 유가족 중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세월호 유가족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이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되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당연히 인양을 해서 가족들 품에 보내드려야 하지 않나.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 책임과 의무를 안 한다고 하면 국가는 필요가 없지 않겠나?”


이 발언에 대한 정부의 대답이 순간 환청처럼 들린다. ‘니들 아니어도 국민 많아.’ 대통령의 눈물과 그 많던 반성과 다짐들은 어디로 갔을까. ‘첫끝발 개끝발’이 나는 뒷골목 화투판에서나 나오는 소리인줄 알았다.

한창훈 소설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29 김원일 2014.11.30 10401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6 36649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6 53664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5451
11115 당뇨 환자에 좋은 식품 & 나쁜 식품 1 이웃 2015.02.10 353
11114 이승철 Lee Seung-Chul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No One Else) 마라도 2015.02.10 293
11113 우리는 <폭풍의 시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예언 2015.02.10 191
11112 조용한 음악-매기의 추억(슬프면서도 감동적인 노래,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태평양 2015.02.10 302
11111 훈련소에서의 나의 신앙생활 4 임용 2015.02.10 330
11110 <자녀를 제지하는 것이 손해가 된다>는 사상이 수많은 사람을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예언 2015.02.10 197
11109 발 질병 때문에 "평생 등산 못해봤다던" 이완구, 2013년 완사모 산악회 등반 사진 확인 2 거짓 2015.02.10 378
11108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2월 11일 수요일> 세순이 2015.02.10 147
11107 초등생의 촌철살인 '시' 1 촌철살인 2015.02.10 329
11106 성령의 능력이 수반됨 1 파수꾼과 평신도 2015.02.10 209
11105 야생화님에게 3 fallbaram 2015.02.10 374
11104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세돌이 2015.02.10 257
11103 여자를 황홀하게 하는 말을 한 남자교인 예언 2015.02.09 318
11102 1844년을 넘어서는 시간 예언은 없음 9 임용 2015.02.09 402
11101 생애 의빛 과 개신교 목사의 끈질긴 대화 1 가치있는 대화 2015.02.09 388
11100 원세훈 실형선고 내린 김상환 부장검사, ‘논어’ 인용한 판결문 화제 2 심판 2015.02.09 365
11099 미국에서 가장 자살률 높은 직업 10가지 오늘 2015.02.09 355
11098 히브리어로 낭독되는 예언의신( 노란 부분 클릭 )/ 기타 11개 국어로 예언의신 낭독 말씀 2015.02.09 329
11097 한나라당 대선불복과 막말 총정리 2 하와이 2015.02.09 340
11096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2월 9일 월요일> 세순이 2015.02.08 330
11095 [만평] "이분, 신학교수 맞어?" 2 file 옛만평 2015.02.08 422
11094 윤동주 시집이든 가방을 들고 1 야생화 2015.02.08 376
11093 주교가 이런 말 해도 되나! 1 배달원 2015.02.08 275
11092 일요일에 예배드리기 시작한 SDA교회 1 file 김주영 2015.02.08 581
11091 의부증 아내와 사는 남자 배달원 2015.02.08 516
11090 경비원 수난 사례 배달원 2015.02.08 245
11089 김운혁 선생님, 교황의 현 활동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 부정의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5 이해 2015.02.08 278
11088 프란치스코 교황 "추한 사회적 불평등 종식해야"(종합) 불평등 2015.02.08 345
11087 어느 전도사의 황당한 예언에 한 가족이... 2 예언2 2015.02.08 392
11086 - 여자와 남자의 생각 차이 - 여남 2015.02.08 339
11085 카스다 3 2015.02.07 437
11084 역사상 처음, 교황이 9월 24일 미국연방의회에서 연설할 계획...<예언의 성취>임을 설명드릴께요 1 예언 2015.02.07 283
11083 <동화,소설,드라마,영화>는 <사탄의 올가미>입니다 4 예언 2015.02.07 356
11082 앞으로 100년 후에 13 김균 2015.02.07 477
11081 언론단체들 “이완구 후보자 사퇴…박 대통령 사과” 2 입 막아 2015.02.07 233
11080 [Official Video] Little Drummer Boy - Pentatonix 남태평양 2015.02.07 155
11079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육영수 여사를 쏘았는가? - 8.15 저격사건, 30년간의 의혹 누가 2015.02.07 417
11078 ‘그것이 알고싶다’ 홍혜선 편, 역대급 충격? ‘게시판 초토화’ 2 선동 2015.02.07 422
11077 유신독재, 박정희를 죽여야 한 이유들 - 김재규 2 1979 2015.02.07 325
11076 숫자가 알려주는 삶의 지혜 후회 2015.02.07 265
11075 재림의 시기를 알려주실거라는 화잇 여사의 언급에 대해 김운혁 2015.02.07 273
11074 30년, 3년, 3일, 3000년 김운혁 2015.02.07 228
11073 고통중에 기뻐함! 9 fmla 2015.02.07 309
11072 서영교 "국정원, 어버이연합에도 자금지원..고발하겠다" 1 어무이 2015.02.07 298
11071 어그러진말과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들에 대하여 2 김운혁 2015.02.07 266
11070 삼육 교육 2 아침이슬 2015.02.06 437
11069 <2015년 2월 7일 토요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 세순이 2015.02.06 297
11068 공짜는 없다 하주민 2015.02.06 247
11067 Already but not yet 4 fallbaram 2015.02.06 309
11066 '싫으면 싫다고 해 이 바보야' 라고 대장님이 말씀하셨다 5 file 김주영 2015.02.06 497
11065 김무성 '국민 나태' 발언에 화살.."의원들은 잘사니까" 1 별나라 2015.02.06 344
11064 예배당안에서 웃거나 속삭이면 안됩니다. 예언 2015.02.05 195
11063 제1부 38평화 (제14회) "서만진 목사 저서에 나타난 평화사상 - 『들판의 숨소리』(시집 1, 2, 3집, 명상집 1, 2, 3, 4권)를 중심으로" 명지원 교수 / 제2부 평화의 연찬 (제152회) : "베네룩스 약소 3국의 역사와 동북아 새질서체제 선도를 위한 남북관계의 큰그림 그리기" 최창규 장로 3 file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5.02.05 284
11062 이런 재림교인은 <가장 비참한 실망>을 당할 것입니다. 예언 2015.02.05 217
11061 "盧, 사초 폐기 안했다 2 봉화 2015.02.05 266
11060 김장훈 "세월호 진실 여전히 갇혀 있어" 1 요한 2015.02.05 348
» [삶과 문화] 팽목항 요한 2015.02.05 240
11058 예수님의 humanity ( 12 ) - 바로 이것이다. 그래 맞아 사람이 우선이다. 잠 수 2015.02.05 343
11057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2월 6일 금요일> 세순이 2015.02.05 297
11056 웹 사이트 '러브인클래식 http://loveinclassic.com/을 소개 드립니다. 전용근 2015.02.05 373
11055 Do you love me? 계속되는 이야기 3 fallbaram 2015.02.05 359
11054 [백년전쟁 Part 1] 두 얼굴의 이승만- 권해효 나레이션(풀버전) HulK 2015.02.05 282
11053 그 맹렬했던 ‘PD수첩’ PD들은 어디로 갔을까 ... 해고·유배·비제작 부서로 뿔뿔이… "왕갈비 축제 기획, 자괴감 느껴" 릴리안 2015.02.04 359
11052 안경환 교수 “박 대통령 지지율 30%, 다른 대통령이면 0%” 기독교 2015.02.04 311
11051 알자지라 “한국인들은 왜 거리로 나서지 않나” 기독교 2015.02.04 265
11050 부활해도 <품성>은 변화되지 않고, <죽을 때와 똑같은 품성>으로 부활합니다 예언 2015.02.04 219
11049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2015년 2월 5일 목요일> 2 세순이 2015.02.04 316
11048 [만평] "일요휴업령, 까마~~~~~~~~득!" 4 file 옛만평 2015.02.04 378
11047 실제수 144,000인에 대해 SDA선구자 들의 증언 11 file 루터 2015.02.04 410
11046 우린 원래 잔인했다 김균 2015.02.04 354
Board Pagination Prev 1 ...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 225 Next
/ 225

Copyright @ 2010 - 2016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