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성가와 성가
요즘 시골 작은 교회에서 찬양대를 지도하다보니
평생 안 하던 짓을 하다보니
이제야 예전에 배웠던 것 생각났다
그러던 중 옛 일기장을 들척이니 내거 퍼 놓은 아래 글이 있어서
같이 나누고자 한다
연말 지선협 성가대회에서 부를 노래를 구하다가
김세환의 좋은 걸 어떻해 라는 노래를 선택했다 거기다가 성가를 접목시켜서
어렌지된 노래를 만들거다
복음 성가에 대한 소고
1)
[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버린 긴 머리 소녀야 ~]
이것을 그대로 짜 맞춘 복음성가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이고
록 계통의 [정말 화가 났을까, 정말 토라졌을까, 밤새 잠 못 자고 끙끙 앓았는데.....] 하던
김세환 가수의 노래가 [가서 제자 삼으라........]로 탈바꿈 되었다.
2)
1600년대 독일에서 출판된 노래가 있었습니다.
제목: 혼란스런 내 마음
작곡자: 한스 레오 하슬러
가사
1. 내 마음이 안절부절이네
그 처녀 때문일세
나는 아주 안절부절 하고 있네
내 마음은 중병이 들었네
낮이나 밤이나 안식이 없고 탄식만 흘러 넘치네
한숨과 눈물뿐, 슬픔 속에 자포자기 상태이네.
2. 아, 만일 그녀가 내게 묻는다면
왜 탄식하고 있냐고, 그 원인이 뭐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 하겠네
그녀가 내 마음에 아주 큰 상처를 주었다고
그녀의 마음을 녹일 수만 있다면
나는 곧바로 다시 건강해 질 것이라고.
자, 이런 노래, 다시 말해서 1600년대 독일의 기준으로 보면
[세속가요]이자 [유행가]인 이 노래를 [가사만 바꾸어서] 성가로 사용한다면 올바른 일일까요?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은 [그래도 좋다] 입니다.
아마도 어떤 분들의 생각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일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한 그리스도인 작곡가로서 드물게 모범적인 삶을 살아간 (성가 작곡가들이
경건한 삶을 살아간 분이 적다는 이야기)
요한 세바스챤 바흐께서
왜 그런 일을 하셨을까요?
그가 새로이 붙인 가사입니다.
오 거룩한 머리에 가시관 쓰셨네
슬픔과 멸시 받아 머리 상하셨네
하늘의 존귀 영광 주 다 버리시고
우리 죄 속하시려 고난당하셨네.
성가(sacred music)와 세속음악(secular music)은
전혀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라
동시대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해 왔습니다.
16세기의 성가와 16세기의 세속음악...음악적으로 별 차이 없습니다.
오늘날 찬미가로 많이 물리우는 19세기 영미찬송가는
동시대의 영미 대중가요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3)
포스터의 작품들...애니로리...올드랭자인...
음악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보니 가사만 바꿔서 성가로 사용해도 별 거부감이 없습니다.
애니로리는 [하늘가는 밝은 길이]로 가사를 바꿔 입었고
올드랭자인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그 외에도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스웨덴 민요
[내 진정 사모하는]-영국민요, 술집에서 권주가로 불리우던 노래였다는 설이 있음.
[자비로운 주 하나님]-미국민요
등등
4)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런 [콘트라팍타:세속음악에 가사만 바꿔서 성가로 사용하는 기법]
찬송가들이 애창성가순위에서 수위를 달린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늘가는 밝은 길이] 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는
애창성가순위에서 빠지는 적이 없다고 합니다.
5)
90년대에 개편된 한국재림교회 찬미가에 [복음성가]로 분류되던 곡들이 몇곡 수록되었습니다.
[네 맘 문에 기다려 계신 주를]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눈 감으면 내 맘에 노래 있네]
[우물가로 나왔던 여인같이]
등입니다.
5,60년대 Gospel song이지요.
이 곡들을 5,60년대 팝송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My way]
[Love me tender]
제가 보기엔 음악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6)
교회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가락과 리듬과 화성은
항상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쪽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악보가 전해짐으로 원형 그대로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성가인
그레고리안 찬트는 읊조리는 수준이므로 리듬이랄 것도 없고
음정의 진행은 언제나 순차진행에다가 단선율 이므로 화성도 없었습니다.
매우매우 단순한 노래이지요.
아마 천주교회에 가면 요즘도 이런 성가를 부를겁니다.
7)
우리가 부르는 찬미가는 그레고리안 찬트에 비하면 엄청나게 복잡해졌습니다.
여러 패턴의 리듬이 사용되고 도약진행이 보편화되고
화음도 단순화음 뿐 아니라 불협화음도 가끔 쓰입니다.
복음성가, CCM으로 넘어가면 리듬의 패턴이 더 강렬하고 복잡해지며
불협화음이 굉장히 자주 쓰입니다.
다재다능하신 김균님.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시군요.
중세 암흑 시대때 파이프오르간도 세속악기 취급을 받았던 적도 있었어요,
종교음악이 성악위주의 예배땐, 악기도 세속적이라 해서 많이 제약되었었고
아카펠라로만 예배때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학문과 문학의 발전의 조류를 타고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교회음악도 발전하게 되어서 오늘날 예배때 없어서는 안될,
그 시대 세속악기로 교회에 들어오지도 못했던 피아노가
요즘 예배음악의 중심역활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종교음악의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세속적이다 비세속적이다로 음악을 구분하는것이 리듬이 아니란 생각입니다.
찬미가나 복음송에는 토속적인 굿거리 장단도 있습니다. 뽕짝리듬도 있어요. 어떤 나라의 민요도 있어요.
그런데도 성스러운 리듬만 예배때 불러야 한다고 하면 찬미가도 안되죠.
단순한 4성부 대위법적 양식 V-I-IV-I 로 옛날 천주교 예배음악양식으로 고집해야지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천하만물의 아름다움을 그 단순한 리듬으로만 표현가능할까요.
가장 성스러운 예배음악은 신령과 진정으로 부르는,
사람 가장 가까이 있는 리듬이라고 믿어요.
종교개혁한 루터가 세속리듬에 독일어 성경을 도입하여 붙힌 choral을 우리가 부르고 있는데
무엇을 세속음악이라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것이 굿거리 장단이든 뽕짝이든..
하나님의 은혜에 흥도 나지 않는 감정없는 예배음악이 세속음악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