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ent 님
며칠 전에 미치 알봄의 "The Five People You Meet In Heaven" (천국에서 만나게 될 다섯 사람) 을 읽었습니다.
(사실은 읽은게 아니라 CD 로 들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읽어줍디다)
소설이죠.
주인공 에디는
평생 놀이공원 기계부에서 일하다가
83세에 일터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일하던 똑같은 직장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출세한 것도 아니고
이름을 떨칠 만한 일이라든지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은 더욱 전혀 없는
블루 칼라 노동자였습니다.
그냥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예수님을 믿었다 어쨌다 하는 말도 없습니다.
이야기는
그가 죽어서 천국에 가서
그 일생에 만났던 (혹은 스쳐 갔던)
다섯 사람들을 다시 만남으로
그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때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그의 눈에는 감추어진 어떤 스토리들이 있었는지
알게 됨으로
평안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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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살한 조영선씨는
십대에 낯선 미국에 와서
친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스물 세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짧았지만 지옥같았던 삶을
견디지 못하고
그 질곡을 헤어나오지 못하고
숙제를 풀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잊혀졌습니다.
영선씨가 언젠가는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또
그 짐승같고 마귀같이 무서웠다던,
한 때 목사가 되겠다고 삼육대학까지 나온
그 아비는
어쩌다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언젠가는 알게 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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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것이 조사심판이라면
1844년에 시작했든
재림 전에 하든, 재림시에 하든, 재림 후에 하든
아니면 개개인이 죽을 때 천국 문턱에서 따로 따로 하든
지성소에서 문 걸어잠그고 진행하든
나중에 1000년기에 다시 속개하든
아니면 천국에서 영원이라는 세월동안 계속하든...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에서 말해오던 조사심판은
미치 알봄의 소설보다
더 말이 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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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선을 위해서는 차라리
토속 무교신앙이라면
진혼굿으로 그녀의 황천길을 달래주었든지
아니면
카톨릭처럼 연옥이라는 걸 만들어 주든지
아니면
다른 개신교처럼 죽어서 천국 문앞에서 주님께 직접 설명을 듣든지
그런 것이
우리의 조사심판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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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사심판에서는
에디나 조영선이나 님이나 저 같은,
욥 같지 않은,
특히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궐석재판이었지요.
내 영혼을 놓고
하나님과 원수가 첨예하게 대립한다고 했습니다.
저 타락하지 않은 무슨 존재들은
제 기록과 운명을 보고
그리고 나아가서 인류 전체의 운명의 갈림을 보고
하나님의 품성은 과연 사랑이시다 라고 하게 될거라고 했습니다.
조사심판에서
에디나 조영선 같은 사람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뭐 특기할 만한 것 없는
아니면 예수를 몰랐거나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선악의 대쟁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밑에 깔려 없어지는
졸같은 존재들입니다.
에디의 스토리
조영선의 스토리
기억되지 않고 말해지지 않고 복습되지 않고 잊혀집니다.
어딘가 기록은 되었을까요?
천국 문서 보관소 어딘가에 남아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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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다에서 언젠가 신실한 우리 교회 변증가 한 분이
'전쟁이란 원래 희생자가 따르는 법이다.
장수가 승리했으면
희생자가 얼마나 있었는지 걸고 넘어지지 않는 법이다'
뭐 이런 식으로 대쟁투를 변증합디다.
아찔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가 그런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명성은 그렇게 지켜지는 것이었습니까?
그렇게 지키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이었습니까?
그것이 과연 이 우주 역사의 주제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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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심판에 대해 많이 생각하신다기에
성급하게 써 보았습니다.
언젠가 어떻게든
영선씨의 영혼이 구원받게 되는 일은 없을까요?
에디나 조영선같은
노아, 욥, 다니엘 같지 않은
진짜 사람들
그렇고 그런 사람들
그 삶의 스토리들이
다시 잘 말해지고
그래서 그 맺힌 것들이 풀리고
그 영혼들은
구원받을
그런 길은 없을까요?
김주영님,
참 좋은 지적이십니다.
무슨 말씀인지 100%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조사심판"이 간단한 문제였다면 제가 그렇게 오래 고민할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조사심판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심판" 에 관한 교리와 신학을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통해 재 조명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지적한 윗 부분에 대한 코멘트는 "조사심판" 마지막에 올리겠습니다.
p.s. 사실 기독교의 exclusivism "구원론 자체가 "조사심판" 보다 훨씬더 문제가 많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에는 "심층"적인 "대쟁투"적인 관점이 기독교 의 많은 신학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p.s.2 미련 님께도 말씀드렸지만 기독교의 legal substitution 도 모순 투성입니다. 전 만약 화잇의 insight 이 아니었으면
"보수"진영 을 진작 포기 했을껍니다. 아마도 "기독교" 자체를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화잇도 마찬 가지입니다. 조금만 오픈 마인드로 화잇의 사상을 연구해보면
그녀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얼마나 깊이있고 대단한 기독교 사상가인지 재조명 받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화잇을 좋아 하는 이유는 그녀 의 "예언"들관 전혀 상관 없습니다. 말이 자꾸 삼천포로 빠집니다.^^
전 김주영님 같이 빠른 시일안에 조리있고 멋있는 글을 쓰는 제간이 없습니다.
시간을 질질 끌어야 한 50%? 그것 도 language barrier 때문에 더 오래걸립니다. 지금 이 글도 약 30 이상 쓴겁니다. ^^ (most of it was spent typing) ^^
thank you for your patience.
p.s.3 위에 말씀하신 "변증가" 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분의 말에 0.0001% 도 동의 할수 없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화잇의 "대쟁투"론은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이시다" "하나님한텐 피조물의 생명이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 는 전제안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화잇의 글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 것이 그녀의 중심적인
사상이라고 전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p.s4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