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의 법정에 선 동성애자
성경에 대한 이해가 바로 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를 적용하면 성경을 근거로 살인을 정당화하는 증오 (또 다른 살인) 가 마치 성경적인것 처럼 느끼게 된다. 범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색깔없는 큰 범죄가 대부분 성경절을 있는 그대로 들이미는 쪽에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고후 3장 7 절로 18 까지에서 성경에 는 두가지 직분이 있다는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을 이해했다고 해서 성경의 온갖 의문을 다 해결했다고는 할 수 없을찌라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에 실로 엄청난 도움 (눈이 확 뚫리는) 을 주리라는 확신은 있다.
그 첫째 직분이 “돌에 써서 새긴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 이라 했고
그 다음 직분은 “영의 직분” 또는 “의 의 직분” 이라 했다.
다시 말하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직분이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 이고
갈바리 (예루살렘) 에서 예수에게 주어진 직분이 살게하는 의 의 직분” 인 것이다.
첫째 직분은 수건에 가려진 것처럼 보는 직분이며 둘째 직분이 온 다음에야 (들째 직분으로 인하여) 수건을 벗게 된다는 말이다.
십자가 없이 율법을 들이대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두 직분은 로마서에서 “율법 (첫째 아담)” 과 “은혜 (둘째 아담)”로 설명이 되었고
갈라디아서에는 하갈과 사라, 시내산과 예루살렘, 몽학 선생과 믿음 이라는 직분의 짝으로
등장하고
요한복음에는 “어두움” 과 “빛” (요 1:1-5) 으로 시작하고 침례요한의 제자에서 예수의 제자로, 가나의 혼인 잔치의 처음 포도주와 두번째 포도주, 보이는 옛 성전(사십년 걸려서 지은)에서 육체로 지은 새성전 (사흘 만에 짓는), 니고데모에게 가르친 거듭남이 없는 행위의
삶에서 그듭남이 있어야하는 믿음의삶, 땅에서 난 이들 (친구) 과 하늘에서 온 자 (신랑),
사마리아 여인앞에 서 전개되는 야곱의 우물 (목마르는) 과 예수의 우물 (다시 목마름이 없는), 다섯 남편 (율법)과 일곱번째 신랑 (은혜), 산에서 드리는 예배와 신령 (영)과 진정 (진리)의 예배,
다시 5장에서 다섯 행각 (율법) 아래 누워있는 38년된 병자 (고칠 수 없는 병) 에서 고침을 받아 완전히 나은자로 변하는 만병통치의 의원(진리와 은혜가 충만한)과의 만남, 안식일 과 안식, 6 장에서 오천명을 먹일 수 없는 떡 다섯 덩어리 (율법) 와 오천명을 먹이는 하늘로서 온 양식, bla bla bla bla bla b la…..
이 과일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는 내용의 선악과인 구약 과
이 과일을 먹는 날에는 “정녕 살리라” 는 내용의 생명과인 신약 이 두 직분의 대립의 짝 이요 엇갈림의 짝이요 서로 보완하는 역활의 짝인 것이다.
천지창조에서 밤이 먼저오고 아침이 오는 그 매일의 주기를 하루라고 하셨듯이 밤은 낮을 설명하기 위해서 있는것이고 바다는 땅을 설명하기 위해서 있는것이고 궁창 아래의 물은 궁창위의 물을 설명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노동은 안식을 설명하기 위해 있는것과 같이 시내산은 땅의 것 (율법)으로 하늘의 것 (십자가) 을 설명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엘리사가 오기전에 엘리야가 와야하고
여호수아가 오기전에 모세가 있어야 하고
예수가 오기전에 침례요한이 와야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육신은 죽고 영이 살아나는 의미의 요단강의 침례가 있다.
그리고 더 큰것이 온 후로는 그 전의 작은것이 사라져야 한다.
그것을 완성이라고도 하고 마침이라고도 한다.
예수가 온 다음에 침례요한은 사라졌지만 모세의 제자들은 사라지지 않고
거의 언제나 예수의 행적을 따라 다니며 어둠의 행위를 어둠인줄도 모르면서 자행하였다.
요한 계시록의 신천지에는 다시 밤이 없고, 바다도 없고 창조에서 쓰셨던 빛 (형광 열사체들)
도 없어진다.
몽학선생이 아니고는 믿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고
율법이 아니고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첫째 아담의 창조가 아니고는 둘째 아담의 구속을 알 수 없음도 염두에 두면서…
이제 다시 민초에서 벌어지는 동성애 고발의 성전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동성애의 그 사악한 죄악들을 근절하기 위한 어둠의 목적과 어둠의 열성으로 동영상을 올리기 위해서 바이블 (신약은 절대 아닌, 신약을 인용하긴 해도) 님이 준비하는 시간은 아마도 칠흑같이 어두운 자정의 시간 (율법에 주어진 시간)일 것이다. 구역질이 날만큼 사악한 행위를 검색하면서 “돌에 써서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을 짊어진 바이블님의 오른손에는 동성애자의 행위뿐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가증한(?) 무리들까지도 작살내기 위한 충분한 돌 (주로 구약에서 뽑아든) 들이 준비되어져 있다. 같이 던져줄 박 성술님과 또 다른 몇분도 계시고, 튀겨 죽일 똥물도 준비가 되고… 분명 반듯한 인상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리스도인 신사로 보여지는 분들일 텐데…
심판관이 까칠한 수염쟁이 김 원일이가 아니라 예수 (성경의 대표선수) 가 나타나도 이 문제만은
자신들의 고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들었을 것이고 바로 그 때가 감람산으로 가셨던 예수가 성전으로 돌아오신 아침 시간 (빛이 시작하는)일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동영상으로 찍은 동성애자를 끌고 들어와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동성애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라고 묻는다.
“은혜”가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중에 죄없는 자( 이성애는 s깨끗하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한번더 몸을 굽히사 땅에 쓰시니…이거 큰일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하나씩 하나씩 떠나갈줄 기대했는데 도데체 이 민초에서는 정죄하는 자들이 떠나 가지를 않는다.
구푸려 땅에 쓰는 그 행위는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을 반복한 것이다. 율법으로는 살아날 자가 너도 나도 아무도 없다는 선언이다. 대신에 “은혜”의 입이 열리면 “아직도 정죄하는 무리들이 율법과 은혜의 이 기막힌 도를 깨닫지 못하고 서슬 시퍼렇게 여기 남아있어도 나는 너희들 동성애자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 고 하신다
율법이 가입한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은헤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롬 5:20,21)
(참고로 죄가 많은곳에 은혜가 넘침이 아니라 율법을 통하여 죄로 인정되고 그 죄가 늘어난
그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내용을 단순히 죄가 많은곳이라고 오해말기를 바람)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헤에서 멀어진 자로다. (갈 5:4)
누구도 동성애가 성경상 죄의 한 모양이라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모를리가 없다. 그러나 그 죄를 정죄하는 것이 다시 죄악이라는 사실을 성경의 이 다른 직분(은혜)을 통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실로
가슴 아픈일이다.
율법의 준엄한 정죄는 이미 충분했다.그 정죄 된 흉악한 죄를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는 그 하늘의 행위( 우리가 할 수 없는 직분)에서 동성애도 치료를 받는 영적 기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을 정죄하기 전에 그들이 짊어진 짐의 무게를 한번쯤 생각하며 그들을 위한 선교 또는 그 이상의 절절한 기도와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그 분 은혜의 입술에서 “나는 니희들을 정죄하지 않는다!” 라고 하시던가
하늘 나라에 가서 그런 사람중 한분이랑 이웃에 살게되더라도 오늘 이 민초의 법정에서 길길이 뛰는 그런 수고를 다시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두 직분 사이에서 코피 쏟으신 양쪽의 노고를 치하하며 더 돈독한 민초의 우정이 있기를 희망하며...
우리가 다 성경을 액면 그대로 믿지않고 (?)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 마침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수건을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동성애도 수건을 벗고 바라보자
너무 훌륭한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