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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에서 머무는 시간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삼일 만에 깨어졌다. 우리를 따라 나온 드보라가 명을 다한 것이었다. 그녀의 나이 155세였다. 우리의 대오가 갈대아를 떠나 올 때에도 그녀는 노환의 기색이 만연하였다. 노구를 이끄는 그녀의 거동은 매우 더디고 힘들었다.

 

그런 유모를 아버지가 강권하여 우리의 귀환 대장정에 합류를 시키셨다. 그녀는 일찍이 청상과부로 살아왔다. 생사를 건, 치열한 영토싸움에서 남편과 외아들을 잃고 홀로 지내다 몇몇의 과부와 함께 할머니의 집안까지 오게 되었다. 드보라는 할머니가 어린 시절 보모가 되어주었다.

 

그런 그녀가 장성하여 혼인길에 나서는 할머니를 다시 수반하게 되었다. 그녀는 갈대아를 떠나는 할머니 일행의 일원의 되어 가나안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우리의 식솔이 된 후 빠르게 우리 집안의 가풍에 익숙해져갔다. 드보라는 할머니가 아버지 쌍둥이 형제를 순산하고 양육하는, 요람기부터 우리 아버지의 체취를 맡아왔다.

 

그녀의 손에서 아버지 형제는 장골의 청년으로 장성하였다. 장자싸움으로 고향을 등지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할머니와 함께 한 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녀였다. 그녀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기어이 내 고향이 된, 그녀의 고향을 찾아왔다. 그녀는 돌아가신 할머니 소식을 전하며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오랜 시간을 울었다.

 

아버지의 회오에 찬, 서러운 눈물은 그녀의 눈물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서로의 굵은 눈물은 떨어져서 바닥에서 합해졌다. 고향을 등져올 때 보고는 다시 못 본 할머니의 비보를 대하는 아버지의 슬픔은 길고도 진했다. 두 분의 통곡에 우리 진영 모두는 함께 울었다.

 

아버지는 드보라의 합류를 더 없이 기뻐하였다. 그녀는 하란에 와서도 어머니를 잘 수반하고 아버지 의중을 읽으시고 많은 형제들 중에 특별히 나를 예뻐하였다. 아버지는 세겜 생활 중에서도 그녀를 잘 챙겨주셨고 드보라는 순종의 일상이 늘 몸에 배어있었다. 그녀는 노령으로 세겜의 참변을 함께 목도하였다. 그녀는 그 살육의 시간에 함께 가슴을 태웠다.

 

그녀는 우리 집안의 모든 희로애락의 내력과 일생을 함께 하였다. 세겜을 떠나기 전 그녀의 심신은 백척간두에 서있었으나 아버지는 그녀를 지근거리에 챙기셨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그녀 역시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누차 말씀하셨다. 그가 죽으면서도 우리를 도왔다.

 

안정된 땅, 벧엘에 이른 후 삼일 만에 숨을 거둔 것이다. 그녀는 혼신의 힘으로 자신을 연명시켜오다 그의 영혼이 안도하며 긴장의 끈을 놓게 된 것이다. 평안한 땅에서 그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그녀는 기척 없는 영면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태생적으로 이질족속이었으나 우리 집안의 혈통을 수혈 받은 자가 되었다. 그녀의 삶 역시 아버지가 지나온 삶의 궤적과 함께 하였다. 그녀는 우리 집안과 함께 한 그의 일생동안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녀는 늘 부지런했지만 그녀의 행동거지는 항상 기품이 배어있었다.

 

그녀는 여왕 같은, 종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녀의 죽음에 아버지는 할머니의 죽음만큼이나 슬퍼하셨다. 우리 진영 모두는 한없이 울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주검을 상수리나무 아래 밑에 묻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향해 짧게 말씀하셨다. “그녀의 삶은 지고지순하였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철필로 묘비에 글을 새기셨다.

 

“아무도 미워한 사람이 없는 아브라함의 딸, 드보라가 여기에 잠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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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지아 2013.12.09 13:28
    요즘 님의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님처럼 소설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워낙 졸필이다 보니 그냥 꿈만 꾸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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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지파 2013.12.09 16:48

    네 격려에 힘입어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속도를 좀 내야 하는데 좀 아쉽게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가보려 합니다.  많이 유익하네요. 이전에는 머리에 맴돌던 내용들이  몸속으로 깊이 들어옴을 느낍니다. 모티브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현장감과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네요. 그냥 시작해보세요. 연재가 부담되면 우선 형편대로 나가면 되지요. 미루다 못하는 일이 죽으면서 가장 후회한다 하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슬픈 일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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