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와 보수의 정치철학(이학사刊)-양승태엮음 중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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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박정희 정권하의 보수주의적 근대화는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국제적 갈등 상황을 군사·정치적으로 격화시켰던 군국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그 대신 그것은 북한과의 군사·정치적 상황을 격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갓다. 그리고 군국주의 침략 내지는 식민화의 주된 대상은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에서처럼 타국이나 외국인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한국 국민들 자신이었다. 홍윤기가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박정희식 군국주의는 "거의 편집광적으로" 산업화를 추진한, 따라서 잘못 잉해하면 "이전이나 이후, 아니 동시대의 어떤 정치 세력과 비교해보아도 진보적"으로까지 보일 수 있는 체제였다.
박정희 정권의 진보성은 농촌과 도시를 가릴 것 없이 전국을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한 식민지로 개척해나갔다는 데 있다. 박정희 정권은 정말 '구질서를 해체하고 동시에 신질서를 수립하는 데 있어 큰일을 완수'하기 위해, 특히 무엇보다 하층계급들이 큰 분쟁을 만들거나 혁명적 상황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근대의 온갖 정치 공학적 테크놀로지들, 즉 물리적 폭력(직접적인 신체적 상해나 인권유린, 체포, 암살, 구금 혹은 추방 등)과 비폭력적이고 은밀한 형태의 폭력(여론 및 상징조작, 적과 동지 편가르기, 정치적 담합, 종교에 호소, 전통적 유교 가치의 조작 등) 그리고 보다 정교하고도 교묘한 심리적 폭력의 형태(위협, 공포심이나 수치심 유발 등)를 동원하였다.
큰일을 수행해내는 데 주도적이었고, 성공적이었으며, 반대자에 대해 강력하게 억압적이었던 박정희식 군국주의의 침략 내지는 식민화의 대상이 되었던 대다수의 중·하층민들은 강제된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희생자이자 다른 한편에서는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간에 산업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식민화의 노예였다. 한국인들에게 강요된 삶 혹은 한국인들 스스로가 선택한 삶은 정치는 더 이상 중요한 의미나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그러한 삶이었다. 한국인들은 근대화에 수반도는 각종 변화 속에서 이득을 얻기 위한 자신만의 논리와 개념을 전개시킬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화의 계기들을 자신의 성장의 적극적 기회로 활용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논리에 결박당한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은 정치 없이도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고(박정희정권이 정치에 관한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있었다), 정치 없이도 세계가 물질적 의미에서 (성장과 발전을 통하여) 개선되고 있다는 세계관이었다.
이러한 삶의 양식은 기본적으로 비정치적(unpolitical)이지만, 산업화·근대화를 통해 얻어진 성과를 지켜내고 영속화하기 위해 각각의 상황과 조건에 따른 변화에 잘 적응해간다는 점에서는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성장과 발전의 열매가 커지면서 이러한 삶의 양식은 거기서 자양분을 공급받아 급속하게 성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인들의 행위와 구석구석에서 확인될 수 있으며, 저질화된 한국 정치의 토대가 되고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주요 대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고위 관료 및 사회 지도층 인사 그리고 무엇보다 일반 서민이라 자처하는 한국인들이 땅 투기, 부동산 투기, 주식 투기 등의 온갖 행위에 몰입하고 있다. 박정희 스스로가 유신 체제라는 영구 집권의 정치를 꿈꿀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지금의 소위 말하는 '경제 대통령'이 현실화될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한국인의 삶 자체의 반영이자 그 귀결이었다.
더구나 한국인들은 독일이나 일본 군국주의의 경우에서처럼 대외 침략이나 식민지 정책의 결과로 얻어지는 이득의 일부가 부수적으로 자국민에 돌아갔던 것과 같은 그러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만큼 한국인들의 (한국이라는 하나의 폐쇄적 공간 속에 갇혀 노예화된 상황을 통해 분출도는) 물질적 보상에 대한 욕구 그리고 물질적 이득에 대한 집착욕은 보다 강렬하고 집요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욕구는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고통, 공격성, 비참함, 그리고 부정의(injustice)를 영속"시키는 "거짓의" 욕구이다.
박정희 정권은 바로 이러한 욕구를 근대의 테크놀로지와 결합시켜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에너지로 전환시켰다. 그것의 핵심은 인간의 현존재를 도식적, 계량적 틀에 맞추어 오직 빵만을 만들어내고, 빵만 먹는 기계로 치환시키는 데 있다. 근대화·산업화를 향한 경제성장의 에너지는 정치를 포함한 다른 차원의 삶을 압도할 만큼 너무나 강렬했다. 근대의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체계화되고 구조화된 이러한 에너지에 비하면 4·19혁명을 통해 분출한 "시민사회의 민주적 에너지"같은 무정형의 에너지는 그것이 결집되어 인간의 건전한 복지를 위해 합리적으로 사용되기에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 보수주의적 삶의 형성과 전개는 '조국 근대화' 혹은 '민족중흥'으로부터 (박정희의 직접적 표현에 따르면)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위한 실천 도장이요, 참다운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한 실천 도장인 동시에 10월유신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 도장"인 '새마을' 건설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추진되었던 국가 총력전 속에서 탄생하였다. 국가 총력전은 전체 한국인의 삶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실제로도 그것을 재편할 만큼 포괄적이고도 강력하게 전개되었다.
국가 총력전의 목적은 경제성장, 이윤 획득, 효율적 업적 수행 및 정확하고도 기민한 결과를 산출해내는 데 있었다. 실제로 박정희의 머릿속에는 온통 국가를 재건하고 재편하려는 이념들, 예컨대 경제와 관련된 건설, 증산, 수출의 이념뿐만 아니라 군사화 관련된 자주 국방, 국방력 강화, 총력 안보의 이념 그리고 정치와 문화와 관련된 국민 총화, 총화 단결의 이념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승만 정권하에서 부활한 친일파 출신 관료들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과거에 일본으로부터 습득한 식민 지배의 감각을 경제적 식민지 개척으로 계승 발전시켰다.
한국을 산업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식민지로 만드는 국가 총력전의 설계자이자 지휘자는 청와대와 경제기획원 중심의 행정부였다. 그리고 국가 총력전의 공개적인 지원자는 공화당이라는 정당 조직이었으며, 비공개적 지원자는 중앙정보부와 보안사와 같은 비밀경찰과 비밀 부대였다. 이들 비밀 조직들은 모든 국가 정보의 독점적 활용이라는 무기를 통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폭력과 테러라는 무기를 통해서 총력전을 막후에서 받쳐주었다. 국가 총력전의 궁극적 척도는 인간과 물건의 존재론척 차이를 제거시키고 인간을 업적 달성을 위한 지배와 조작의 대상물로 만드는 데 맞추어졌다.
총력전은 무엇보다 '반공', '승공' 혹은 '멸공' 등의 전일적인 이데올로기적 실천과 결부된 반자유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각종 제도들과 단체들의 활동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지식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합리호와 이것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제도들과 단체들의 조지고하를 위한 이념적 도구를 제공하였으며, 그럼으로써 한국에서 보수주의적 삶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무엇보다 지식인들은 유교의 핵심 사상인 충효를 "국가의 가부장적구조"를 떠받치는 이념으로, 그리고 "실학적 정신"을 "경제 제일주의"를 떠받치는 이념으로 자리매김시킴으로써 "전통주의와 보수주의를 밀착"시켰다.
박정희에서 절정에 이르고 이승만에서 시작되어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독재와 권위주의의 변주곡의 작사에 안호상, 박종흥, 이규호 등의 지식인들이 참여하였다. 권력은 지식을 필요로 햇고, 지식은 권력을 필요로 했다. 박종흥은 국민교육헌장과 새마을운동 그리고 반공 교육에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엿고, 이규호 역시 (자의든 타의든 간에) 반공 교육을 정치교육과 밀접히 결합시키는 이념을 개발함으로서 박정희 정권의 총력전을 정당화시켰다. 교육에 대한 이규호의 생각은 조국 근대화, 민족중흥 그리고 새마을 건설을 향한 박정희의 국가 총력전에 관한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그는 실제로 국민교육헌장 제정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그에게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한 노력은 "조금이라도 늦출 수" 없는, 그리고 군사, 경제의 영역을 넘어 교육의 영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긴요한 것이었다. 권력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해주어야 하는 교육은 그에게 정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시대적인, 인류사적인, 민족적인, 국가적인, 거의 절대적인 요청에 따라서 일반 국민의 교육에 대한 이해와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교육 체제를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헤겔과 맑스의 철학적 이론을 토대로 해서 시대 비판적인 요구에 상응하여 전개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이론'조차도 국민 윤리 교육을 정당화시키는 이론으로 활용하고 있을 만큼 이념적 빈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념적 빈곤이 바로 오늘날 한국인들의 전체 삶을 지배하고 있는 보수주의의 실제 내용이다.
제5장 <한국에서 보수주의의 의미에 대한 하나의 해석-최치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평화연구소 교수)중에서 발췌한 글.
김 구, 장준하 같은 이들이 진짜 보수주의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박통은 짝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