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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도, DJ도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하지 않았다

국내정치 2010/03/24 20:53 최재천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고,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과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는 얘기는 이제 하나의 ‘가공된 역사’가 됐다. 본래는 4대강사업에 대한 반대를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반대로 ‘교묘하게’ 등치시키며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여기에다 청계천도 마치 반대가 많았다는 식으로 언급되곤 한다. 원래 청계천 사업은 한겨레신문 등이 내건 진보적 의제였음을 벌써 잊고 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공약이나 건설 당시 국민은 반대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자. 


고속도로 건설 공약을 내건 박정희 대통령을 선택했다 

첫째, 1967년 4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은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속도로의 건설을 공약하기에 이른다. 이를 실천하고자 5월 1일에는 서울-인천간 고속도로 건설을 기공하는 한편, (7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이후인) 1967년 11월 7일에는 제2차 5개년계획기간(1967~1971년) 중 계획에도 없던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건설부장관 주원씨에게 지시하게 되고,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김용환 회고록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 매일경제신문사, 2002년, 53면 이하 참조). 

이때 당시 김용환은 재무부 이재국장이었다. 

선거는 1967년 5월 3일에 있었다. (선거 공약에 대한 반대차원에서 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윤보선 후보가 아니라) 고속도로의 ‘전면’ 건설을 내건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국민들은 ‘고속도로 건설’에 동의한 셈이다. 
그렇다면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국민들이 반대했다는 말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1968년 1월 여론조사도 압도적 찬성이었다 

둘째,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발표된 직후 월간 <세대> 1968년 1월호가 각계 인사 100명에게 찬반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68%가 무조건 찬성, 27%가 조건부 찬성, 5%가 반대를 표했다. (한상진, <고속도로와 지역불균등 발전>,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2 근현대편』, 역사비평사, 350면 이하 요약) 
이때 이미 우리 사회는 근대화와 개발, 성장주의의 세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한편, 조건부 찬성을 포함하여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유보적인 32명의 의견은 무리한 재정지출에 대한 우려가 12명, 투자 우선순위상 시급하지 않다는 주장이 8명, 제외된 지방의 발전지체 우려가 4명, 기타 8명의 분포를 보였다. 
당시의 여론조사가 이런 결과라면 국민이 반대했다는 것은 결코 옳은 해석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렇게 동의하는 이상, 정치권의 반대 또한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한상진, 앞의 논문) 


반대는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기구였다 

셋째, 가장 중요한 반대는 국내가 아니라 국제기구였다. 
세계은행의 자매 기구인 국제개발협회(IDA)는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남북종단보다는 횡단도로가 더 시급하다”고 함으로써 차관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그 후 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에 경제협력과 지원을 타진하였으나 성과는 마찬가지였다(경제기획원, <개발연대의 경제정책>, 김용환 회고록에서 재인용) 

사실 IBRD의 반대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돈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가 불가능한 우리 현실에서 돈은 세금인상과 채권, 그리고 사용료, 거기에다 국제기구로부터 차관을 받아오는 수밖에 없었는데, IBRD가 반대하고 나서니 한마디로 큰 일이 난 것이다. 

실상 가장 중요한 반대는 바로 이쪽에 있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없었다, ‘대안을 제시한 반대’였다 

넷째, 반대는 나름대로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국도와 지방도의 포장이 선결과제라는 것이었다. 
“교통부의 의뢰를 받아 1965년 11월부터 1966년 6월까지 한국 교통상황을 조사한 IBRD의 보고서는 철도 중심의 수송체계를 도로 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유료 고속도로의 건설보다는 국도, 지방도의 포장에 치중할 것을 주문했다.(한상진, 앞의 논문)” 

둘은 당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강사였던 기우식의 논리이다. 
“경부고속도로 완공시점인 1970년 9월호 월간 <신동아>에서 당시 서울대 행정대학원 강사였던 기우식은 그 같은 논리를 따라, ‘지역경제의 생활공간이 충분히 이용될 수 있도록 지역 내부를 잇는 교통망, 지역 간을 잇는 교통망이 서서히 형성된 다음에 비로소 고속도로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한상진, 앞의 논문)” 

셋은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성두다. 
“더 나아가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성두는 ‘가격정책 등 농민소득수준 향상을 저해해온 경제순환의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시정하지 못한다면 고속도로 개통에 따른 국민시장권의 공간적 확대는 생각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교통의 편익증대에 따른 전시효과의 확대로 지방민의 서울 집중을 촉구할 수 있고 농공 간 부등가교환이 촉진되어 지역소득의 도시흡수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한상진, 앞의 논문)” 


DJ는 고속도로 건설 자체는 동의하면서도 지역불균형을 비판했다 

다섯째, 같은 맥락과 논리에 DJ가 있었다. 
“한편 고속도로 건설이 지역불균등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한 논객으로는 당시 건설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이 단연 돋보였다. 그도 고속도로 건설 자체는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과 긍지를 느낄 일이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1967년의 제62회 국회 건설위원회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한마디로 ‘머리보다 다리가 크고 양팔과 오른쪽 다리가 말라버린 기형아 같은 건설’이라고 규정했다. 그 의미는 두말할 나위없이 영남 지역으로의 교통망 집중이 강원‧호남과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것이었다.(한상진, 앞의 논문)” 

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후보는 윤보선이었다. 이때 DJ는 단지 국회의원일 뿐이었다. DJ는 결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역구인 호남만을 고려하는, 호남푸대접만 강조하는 것도 아니었다. 국제기구의 조언과 보고에 합당한 영동고속도로의 건설을 먼저 주장했다. 이는 결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었다. 

“그는 1968년의 제63회 국회 건설위원회에서 IBRD의 보고서에 근거하여, 서울-부산간에는 철도망과 국도, 지방도가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오히려 서울-강릉간 영동고속도로를 가장 먼저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원도에는 지하자원과 관광지가 많음에도 아예 철도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호남 차별정책도 거론하면서 경부선 복선철도에 비해 호남선 철도는 단선인 데다 낡아빠졌는데도 경부고속도로를 우선 추진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한상진, 앞의 논문)” 

사실이 이러함에도 역사적 사실은 왜곡되고 있다. 모든 대안은 그저 반대로만 묘사된다. 나와 다른 생각은 무조건 반대로 해석된다. 대안마저도 반대다. 논쟁은 불가능하다. 논쟁 자체는 아예 봉쇄된다. 예나 지금이나 말 많으면 공산당일 뿐이다. 


문제는 돈이었다 

다시 김용환 전 장관의 회고다. 
“‘국가 간선 고속도로 건설계획 조사단’은 최저액인 서울시의 180억 원과 최고액인 건설부의 650억 원의 중간치인 315억 원과 현대건설의 280억 원을 비교 검토하여 300억 원 규모로서 사업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 건설비는 뒤에 건설부의 건의에 따라 예비비 10%를 가산하여 330억 원으로 재조정되었고, 실제로 시공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 결국 약 430억 원이 소요되었다(건설부, 『국토건설 20년사』).” 

결국 세금을 올리기로 했다. 휘발유세를 100%에서 200%로 올려 돈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서 145억원이 마련됐다. 당시 예상했던 소요공사비는 365억 인데, 이 중 145억 원을 세금인상분으로 마련키로 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동의했다. 재원 마련 계획에 대한 보고가 있던 날,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만찬을 베풀었다. “복 요리를 곁들인 성찬이었다.” 

역시나 세금에 대한 인상은 야당보다는 집권여당 내부에서 더 큰 문제로 작동하는 것은 옛 정치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결국 돈 문제가 가장 무섭다. 

“한편 재원조달 방안의 일환으로 보고한 휘발유세를 인상하기 위해서 휘발유세법을 개정하려 하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조차도 정부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급기야 휘발유세의 인상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대신, 이것이 당정간 불협화의 원인이 되어 서봉균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불상사를 겪게 되었다. 지금도 그 분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김용환,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 60면)” 


마지막 한 가지. 
지역 감정이라고 비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시나 지방분권, 지역 균형개발 차원에서 이해했으면 좋겠다. 

“박정희는 1967년 6대 대통령 선거 때 호남 푸대접을 들고 나온 호남인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호남선 복선화를 공약했다. 그러나 이것은 착공만 했을 뿐 실제 공사는 조금도 진척이 없었다. 1978년 3월 30일 겨우 대전-이리(익산)간 복선이 개통되었을 뿐이고, 이 문제는 90년대까지도 국회에서 논란이 되었다.(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사실 경부고속도로 반대와 관련된 진실게임의 아이디어는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에서 시작됐음을 정중하게 적어두고자 한다.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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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산 2013.04.03 15:12

    사진까지 조작한 반대여론


    경부고속도로 반대 ‘일리 있는 논리’
    2010 02/09위클리경향 862호
    ㆍ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ㆍ당시 야당 ‘남북종단’보다 도로 열악한 ‘동서횡단’ 우선 건설 주장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야당 정치권에서 목숨을 걸고 반대했습니다. 국가를 팔아먹는다, 업자를 위해 그 일을 하느냐,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 나라를 망가뜨리려 하느냐, 그 예산을 차라리 복지에 써라 등 내용을 보면 요즘과 비슷한 반대의 목소리인 것 같습니다.”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코로나 승용차와 그 옆을 걷는 할아버지. 1970년 7월 7일.


    “도로 건설 찬성하나 우선순위 의문”
    지난해 11월 28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날 이 대통령은 청계천과 함께 경부고속도로를 ‘반대에도 무릅쓰고 관철시켜 결과적으로 좋아진 예’로 거론했다. 당시 언론, 학계, 야당의 반대에 맞서 관철시킨 박정희 대통령의 선견지명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발전이 있었겠느냐는 인식이다. 이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꺼낸 것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4대강 사업 이전에 ‘한반도대운하’를 추진할 때도 이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의 예를 자주 거론했다.

    실제 야당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당시 신문자료를 뒤져 경부고속도로와 관련한 쟁점을 검토해 보았다. 동아일보는 1968년 1월 11일자에 ‘밝은 정치를 위해 유진오 신민당수에게 듣는다’는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유 당수는 인터뷰에서 히틀러의 아우토반을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부고속도로 계획은 근대화의 기간인 도로 건설이라는 데서 그 취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현 경제 실정에 비춰 사업의 우선순위에 의문을 갖고 있으며, 남북 간보다는 오히려 동서 간을 뚫는 길이 급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발언은 당시 신민당 당론을 반영하고 있다. 즉 ‘취지를 반대하지는 않으며, 남북 간보다는 동서 간을 뚫는 길이 급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거는 무엇일까.

    1968년 2월 22일 오후 2시 국회에서는 63회 건설위원회 3차 회의가 열렸다. 김형일 신민당 의원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대중(DJ) 신민당 의원이 질의한다. “…시급한 것은 동서를 뚫는 그러한 교통망이 필요하다, 이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이 대륙에 진출하기 위해 남북종단에 철도와 도로를 치중하였기 때문에 그 유산으로서 이와 같은 교통 체제가 되어 있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재원 또 한정된 능력을 가지고 지금 가위 우리나라 현실로 보아서 그래도 가장 발달된 그 노선에 다시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 급한 것은 뒤로 미루고 안 급한 것은 먼저 한다, 이런 일을 정부가 하고 있다는 건데….” 김 의원의 주장 요지는 이미 일제 시대 때 대륙 병탄 목적으로 남북종단 교통체계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군사용 도로를 제외하고는 철도·도로 시설이 거의 없는 강원도를 연결하는 동·서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더 필요하며, 세계은행(IBRD)의 결론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김 의원의 질의에 대한 주원 당시 건설부 장관의 답변이다. “전국에서 교통량 수송량 전체를 볼 때 가장 폭주하고 있는 것을 완화하는 것이 긴급한 문제이며, 그래서 이것(경부간 고속도로)이 된 것이다. 지역을 개발하거나 도로의 선을 결정한다든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권력이나 정치적 압력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조작된 기억’

    IBRD가 내놓은 한국 고속도로 건설 관련 의견보고서. 김대중 등 당시 야당 측은 이 자료를 근거로 경부고속도로보다 동서횡단 건설 우선론을 주장했다.

    “정치에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박 전 대통령도 강조한 말이다. 경향신문 1969년 3월 21일자 기사를 보면 그는 경부간 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업체 대표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조기 완공을 당부하면서 “일부에서 말하듯 정치에서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7개월 뒤 언론은 박정희의 3선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여당 쪽에서 만들어진 정치 신어(新語)로 ‘하이웨이 전술’이라는 것을 꼽았다. “경부간 고속도로 건설을 내세워 정부 실적 PR를 최대한 활용키로 한 것. 지난번 오산~천안간 고속도로 개통식 때 많은 시민의 운집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이후 부상된 것.”(경향신문 1969년 10월 7일) 그리고 1971년 대선. 신민당 후보 김대중은 “우선은 지방 국도 포장, 2단계로 고속도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공화당 후보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여러 고속도로 동시 착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논쟁으로 보는 한국현대사>란 책에 ‘고속도로와 지방불균형발전’이라는 장을 저술한 한상진 울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김대중이나 야당의 논리는 고속도로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가 아니었고, 실제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 소외된 전라도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급속한 이농현상 등이 발생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말했다. DJ의 주장대로 서울~강원 간 고속도로가 우선 만들어졌다면? 교양역사서 <타르타르스테이크와 동동구리무>를 펴낸 정창수 박사는 “강릉은 대도시가 되어 있었을 것이고, 부산은 부산대로 지리상 발전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해상교통이 발달하고 해안지역의 전반적 개발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야당의 반대가)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주장은 만들어진 기억”이라고 말했다. 실제는 경부고속도로 개발 반대론이라기보다 차선론이었고, 나름대로의 대안적 논리가 있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 등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딱지를 붙인 이후 진실로 둔갑한 ‘조작된 기억’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야당사’와 관련해 여러 권의 책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전 대한매일 주필)은 “박정희는 당시 야당을 두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고 몰아붙여 왔지만 야당이 그런 정도라도 비판했기 때문에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전에 줄부터 긋고 그런 것은 막을 수 있었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4대강 관련 예산안이 국회에 통과되기도 전에 착공부터 하는 현 정부는 박 정권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경부고속도로 반대’ 야당 시위 사진은 조작?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이후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김영삼·김대중 등 야당 인사들이 건설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며 인터넷에 유포된 사진. 사진은 일부 내용 변조 등으로 미뤄볼 때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인식대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야당은 ‘목숨을 건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을까. ‘국민과의 대화’ 전후로 인터넷에는 한 장의 사진이 돌았다. 굴삭기 앞에 두 남자가 누워 있고,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밑에는 다음과 같은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 

    공사현장에 몸소 드러누워 진보, 개혁, 민주화운동을 몸으로 실천하신 ‘움직이는 양심’ 슨상님.” 굴삭기 앞에 누워 있는 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완공되던 1970년,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출처 불명의 이 사진 속 인물은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당 인사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뒤에 도열한 사람들이 들고 있는 손팻말의 ‘끝까지 결사반대’라는 글씨는 원래 글씨로 보이지만 이것이 경부고속도로와 관련된 사진이라고 주장이 가능한 ‘고속도로 반대’라는 글씨는 누군가가 사진에 가필(加筆)한 것이다. 사진을 살펴본 장신기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은 “실제 누워 있는 사람의 옷차림이나 체형 등은 김대중 당시 신민당 의원과는 다르다”면서 “일부에서는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이 김 전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무라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
    괘도루팡 2013.04.03 16:21

    로산님은 이중에 하나라도 읽은 적이 있는지요?

    해전사,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만준의 한국근대사 산책, 이이화의 한국사


  • ?
    로산 2013.04.03 16:41

    독후감 부탁합니다

    늙은 나이에 그것 다 읽을 시간 어디있어요?

    낚시 하고 지내기도 빠듯한데요

  • ?
    괘도루팡 2013.04.03 16:55

    어린이 처럼 독후감? 유치하군요.

    역사서도 독파하지 않고 역사를 논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 ?
    로산 2013.04.03 17:20

    님은 학교에서 배운 것도 책을 읽지 않으면 배운대로 하는 것도

    죄악이라 여기겠군요

    그것 어디 식이지요?

    꼴통 식인가요?

  • ?
    괘도루팡 2013.04.03 18:14

    얕은 지식은 얕은대로 인정하시면 되는 거죠

    초등학생이 대학생 흉내 내는 것은 죄악입니다.

    수준낮은 최재천의 글이나 긁어오면서 역사를  논하시다니...

  • ?
    로산 2013.04.03 19:21

    수준 낮은 것 인정합니다

    그래서 유유상종하지요

    그런 내게 대꾸 하는 님은 고학력일 것 같군요 미안합니다

    그런데 최재천의원은 나 같은 그런 수준 아닙니다


    최재천 의원은 전남대학교 대학원(법학박사)을 졸업했으며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광운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 등으로 있었습니다. 

    국내최초 담배소송 공익변론 및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심청구소송 등의 사건을 수행하였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회원, 성동구청 법률고문, 주한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 법률자문,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등을 지냈습니다.


    최소한 괘도루팡님 보다는 나은 사람 같은데

    건방진 똥덩어리 낙동강 30리 기어 올라가지 마십시오

    썰물 되면 도로 떠 내려 옵니다


    아참 나 1952년에 초등하교 졸업하고

    1955년에 중학교 졸업하고

    1958년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1963년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ㅋㅋ

  • ?
    로산 2013.04.03 22:31

    어이 최재천의원보다 더 똑똑한 분

    나하고 5만원 내기해 보실라요?

    왜 답이 없어요?

  • ?
    웃음 2013.04.04 00:15

    내가 보기에는 로산님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어서

    이론을 만드시는 것 같은데 말씀하시는 것이 다 좀

    수준 이하입니다.

  • ?
    로산 2013.04.04 03:26

    웃음님

    많이 웃으십시오


    도서관 왜 있습니까?

    인터넷 검색창 왜 있습니까?


    아직도 19세기 살고 있습니까?


    님의 댓글이 수준 이하라고는 생각지 않습니까?

    이런 무식한 분하고 내가 이야기하다니

    양피지에 쓴 글이나 읽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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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4 영적 성장은 이제 한계에 왔는가? 평화의 연찬 제57회 (주관 : (사)평화교류협의회) 평화교류협의회 2013.04.10 2480
5643 그가 침묵한 이유 김원일 2013.04.10 2136
5642 언젠가 이 게시판을 달궜던 이동근 님께 드리는 글 선물 1 그렁그렁 2013.04.09 2526
5641 전 합회장님이 폭행을 당하였습니다. 18 맑은창 2013.04.08 3397
5640 가장 귀하게 될수 있는 복을 걷어차는 사람들 2 산나무 2013.04.08 2304
5639 이런 경우에도 조심해야 한다. 1 산나무 2013.04.07 2218
5638 2천년 재림 기별만 가르치지말고. 엿 만드는 기술 이라도 함께 가르쳐 주셨드라면 14 박성술 2013.04.07 2320
5637 베리칩 으로 인류 70억 노예화 전략 실체 음모 file 최권능 2013.04.07 2661
5636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가인의 십자가 였다면, 어땠을까??? 학생님에게.. 3 김 성 진 2013.04.07 2191
5635 예수는 과연 죽으러 왔는가? 1 김원일 2013.04.07 2225
5634 안식일 교회에서 꼭 없어야할 존재... 21 student 2013.04.07 2676
5633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하늘 정부가 존재할까? 2 김균 2013.04.07 2124
5632 한국에서 그리스도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5 아기자기 2013.04.06 3026
5631 산나무 님께 드리는 부탁 21 김원일 2013.04.06 1864
5630 로산과 이별하면서 2 김균 2013.04.06 1940
5629 베리칩 으로 인류 70억 노예화 전략 실체 음모 기도 많이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4 file 예수천당 2013.04.06 1921
5628 선악과 사건은 실제인가? 1 바이블 2013.04.06 1550
5627 안식일교회에서 하나님보다 강한 존재 4 김주영 2013.04.06 1962
5626 나는 요즘 평생 안 하던 짓을 하고있다 4 김균 2013.04.05 1847
5625 참으로 웃기는 민초스다구나 ㅎㅎㅎ 2 대실망 2013.04.05 2782
5624 좋은 영화 한 편 - Quartet 김주영 2013.04.05 1913
5623 김원일님의 이해할수 없는 변명 2 바이블 2013.04.05 1986
5622 김 교수님, admin님 그리고 누리님들께! OpenBSD 5.2 Webserver XE 그리고 민초스다. 3 기술담당자 2013.04.05 2475
5621 [평화의 연찬 제56회 : 2013년 4월 6일(토)] ‘재림은 과연 임박 했는가 ?’박준일 (사단법인 평화교류협의회 상생협력대표)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3.04.05 1809
5620 영웅 이라 불리우던 한때의 신앙노동자 10 박성술 2013.04.04 1703
5619 나의 가족사를 끈질기게 거론하는 그대(들?), 그리고 뒷북치며 장단 넣는 그대들에게 김원일 2013.04.04 2033
5618 외눈깔 그리고 두 눈깔로 보는 세상 로산 2013.04.04 1833
5617 혼란과 반역의 요소를 일으키는 단체와 조직들 산나무 2013.04.04 1912
5616 강도질보다는 나으니 도둑질은 괜찮고, 살인보다는 나으니 죽지 않을 만큼 때려도 좋다는 윤리관--이런 식으로 남북을 비교하는 사람들 14 김원일 2013.04.04 11979
5615 삐뚫어진 사람들 (지경야인님 참고) 6 최인 2013.04.04 1723
5614 성경 말씀을 비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2 산나무 2013.04.04 1987
5613 어떤 사람이 가장 위험한 상태인가? 1 산나무 2013.04.03 1749
5612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길 산나무 2013.04.03 1446
5611 왜 진리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가? 산나무 2013.04.03 1593
5610 비뚤어진 나의 눈 5 지경야인 2013.04.03 1849
5609 사단의 궤변을 조심하자! 산나무 2013.04.03 1470
» 역사를 바로보고 살자- 이 누리에 오시는 분들께 10 로산 2013.04.03 1666
5607 금으로 만든 대가리-User ID님 참조 6 로산 2013.04.03 2506
5606 이방인들과의 교제의 결과 산나무 2013.04.03 2178
5605 당신은 어떤 공격을 받고 있는가? 산나무 2013.04.03 1682
5604 쓰레기 인간들 8 바이블 2013.04.03 1697
5603 너네들 집안에 7 로산 2013.04.03 1435
5602 스스로 안심하는 자들은.... 산나무 2013.04.03 1658
5601 사단의 그럴듯한 이론에 속지 말자! 2 산나무 2013.04.02 1507
5600 친구라고 공언하던 자들... 1 산나무 2013.04.02 1696
5599 쇼생크 탈출(피가로의결혼) 1 serendipity 2013.04.02 2366
5598 저물어 가는 우리세대가 생각하는 박정희 25 박성술 2013.04.02 1708
5597 쿠데타 왜 했느냐고 내가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라.--조회수 15 후 수정 7 김원일 2013.04.01 1685
5596 짜게 먹는 사람들 살판 났다 우리 집에도... 1 로산 2013.04.01 1811
5595 재림교회 최초의 사설 성경학원 설립 5 file 최종오 2013.04.01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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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3 우리 신앙의 수치심에서 로산 2013.03.31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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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1 동성애가 선이냐! 3 바이블 2013.03.3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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