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안식일이라는 우리 재림교회의 목숨같은 주제를 건드리면서
일어나는 먼지가 민초의 들판에 자욱하다.
율법 옹호자라고 우선 편리하게 분류한 이 옹호 그룹과
그들이 생각하는 폐기론자라고 하는 그룹과의 서로간 주장하는 내용이
다름도 다름이지만 우선 그 목숨같은 것을 건드린다는 강박관념에
어떤 내용인지도 알려고 하지않고 무조건 들이대는 그 뿔들이 가관이다.
안식일을 손보고 그 안식일을 격상시킨 일을 우리가 한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셨다.
율법을 손보고 그 율법을 더 아름다운것으로 더 온전한 것으로 격상시키신 분도 예수님이시다.
그 이야기를 성경이 했다.
그 성경 이야기를 우리가 했다.
그리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아래의 글들에는 그 이상을 이야기 하는 글들이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니 당연히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게 되지요.
그러니 당연히 율법 조문 하나하나에 얽매여 육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려고 했을 땐 택도 없었던 것이 이제 예수그리스도께 시집왔으니 그분의 사랑에 매여 순종하는 삶을 살다보니까, 그리고 그 매어있고 순종하는 삶이 너무 행복하다 보니 더 이상 율법의 조문을 일일이 따져 지키려고 발버둥치지 안아도 그 사랑안에서, 그 역사하심 안에서 그분께서 그분의 옷을 입혀주시고
여기까지는 성경적이다.
우리모두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 다음이 문제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시 율법의 의라는 것으로 한층 더 나아간다.
아래와 같이-
그러한 삶을 살 능력을 주심으로 온전히 율법의 의를 이루게 되니..
이 아래의 글은 석국님이 나에게 한 댓글의 내용이다.
멍청이가 아직도 깨닫지를 못했네 예수님과 성령님이 곧 살아계신 계명이래두 알아듣지를 못하네 유대인들에게나 할소리를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면서 무법한 자가 되라고 부추기는 어리석은 인생이여
멍청이 눈에는 멍청이만 보인다는 원리가 여기도 등장한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곧 살아계신 계명 이 된다는 이 억지가 문제이다
이 부분이 어떤 표상적인 내용이나 철학적 수준에서 거론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결국 이 게명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따로 있는것이 문제이다.
십자가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죽음뿐임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었으며 이것을 확증하신 것이었읍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는 것이었을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이라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죽음에 처하게 하셨읍니다.
십계명을 헐고 조롱하는 자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엄위하심도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순종도 비웃는 개망나니 같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법을 마음속에 새기시는 성령을 대적하는 중죄인들입니다. 사람을 정죄하는 문자적 법에서 능력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된 십계명을 폐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땅의 진토가 되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의 발밑에 밟히게 될 것입니다.
위의 두줄은 매우 성경적이다.
사람을 정죄하는 문자적 법에서 능력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된 십계명
이말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말이다. 문자적 법이 성령으로 다시 생명의 법 죽 십계명으로 다시 어떻게 거듭났는지가 궁금하다.
마음에 새기는 생명의 법은 성경상으로는 죽음의 직분인 그 의문의 율법 (고후 3장)이 아니고 은혜라는 감사의 마음이다.그것은
은혜에 대한 믿음이다.
신의 임재를 늘 느끼고 있다면 우리가 구태여 법과 윤리를 논할 필요조차도 없다고 봅니다.
그 분이 법이요 그 분이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말도 얼마나 은혜스러운가
그 분을 법과 윤리의 동격으로 몰아가고 싶을 만큼 그 마음에 법에 찌들어 있음이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형태이건 하나로 된 법이건 열개로 된 법이건
신이 우리에게 주신 법이라면,
그 법을 의식하고 있는 한, 신이 내 곁에,
임마뉴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뿅 갈수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 함정이다.
성경은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지만
십자가로는 의를 깨닫게 한다는 의미를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이 있고 망하는 자와 율법이 없이 망하는 자를 말하고
율법이 없이도 은혜가 이르러 올 수 있다고 문을 열어 놓았지만
법을 의식하고 있는 한 임마뉴엘이 가능하다면 이방인이나 안식일이 없는 자들에게는
임마뉴일이 없다는 결론으로 가고 말것이다.
실제로 지성소안의 돌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임마뉴엘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지성소로 오신 예수안에서 (하늘로서 오신) 만 이루어진 십계명의 온전한 요구와 성취를
말함이다. 우리 죄인에게 똑같이 요구하는 법이 아닌것이다.
이러한 저의 신학속에서,
김주영님이나 그외 여러분들이 말하는 십계명을 졸업하느니 폐하느니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 속의 신의 임재를 부인 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십계명이나 율법을 지킴이 신의 임재라고 믿는 이 토속신앙보다 못한
이설이 나는 실로 걱정이다. 이 우물을 길어 올려 보아도 여전히 목마를 것이다.
그리고 모든것을 항시 길어 올려야 할것이다.
자꾸 성경보다 앞서서 날 뛰지 말고 차분히 애벌레 처럼 성경을 이파리 하나 하나
먹어 보라니까
어쨋거나 하도 게명계명 하니까 궁금해지는 것이있다.
옹호론자들 중에 나는 이렇게 지켰소 라고 시원하게 발표 한번 해 보시오.
성령으로든 무엇으로든 말입니다.
더 좋은 계명 더 온전한것을 지키라는데 와이리 말이 많을!까
멍충이 보다 못한 멍충이들이 제발 되지 마시오!!!
절대로 계명 다 지켰다 라고 할자들 단연코 없을걸요.
한결같은 게명에 특성. 종류 ,성격 .목적.본질 이런거
학문적으로 분석.해석 은 잘해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적용은 하지못하는 모순.
쉽게 말해서
지키지도 못하면서 옹호하는 마음.
그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