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종교적으로 소수인 사람들이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친기독교 성향에 제동을 거는 소송이 가끔 있었다. (관련 기사: 감옥에 있으니 강제로 예배해야 한다?) 이들은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기독교뿐만 아니라 소수 종교 활동도 자유로이 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 간 차별을 금지하는 근거로 수정헌법 1조를 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와는 반대되는 일들이 미국 기독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동성 결혼이나 사립대학의 학위 발행 등에 있어 정부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기독교인들이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보장해 달라고 정부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있다. (관련 기사: 일부 미국 신학교들, '종교 자유 침해' 이유로 주 정부 고소)
믿음 때문에 해고된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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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틀랜타 시 소방국장이던 켈빈 코크란(Kelvin Cochran)은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던 2013년, 자신의 기독교관을 담은 책을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소수자 차별을 언급한 사실이 인정되어 2014년 11월 해고되었다. 그는 자신이 종교적인 신념을 지켰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며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과 함께 애틀랜타 시 당국과 시장을 고소했다. (자유수호연맹 홈페이지 갈무리) |
1964년, 미국 인종차별 역사에 획을 긋는 법이 제정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한 민권법(Civil Rights Act)이다. 이 법이 제정될 당시 4살이던 흑인 꼬마가 있었다. 이 꼬마는 대부분의 흑인들처럼 가난과 인종차별 속에서 자랐다. 1981년 어릴 적 꿈인 소방관이 된 켈빈 코크란(Kelvin Cochran)은 소방관들 사이에서 관행처럼 행해지던 인종차별을 극복한 경우다. 그에게는 늘 '흑인 최초'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2008년 애틀랜타 시 소방국장을 거쳐 2009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하는 국가 최고 소방 관리직에 올랐다.
한때 미국 최고의 소방관으로 여겨지던 그는 현재 무직 상태다. 2010년 애틀랜타 시는 소방관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던 그를 재고용하며 5년의 임기를 보장했다. 그러나 고용 기간이 남아 있던 그가 2014년 11월 갑자기 해고되었는데 업무상의 과실 때문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 코크란은 <누가 너를 벗었다고 하였느냐>라는 신앙 서적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그의 신앙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는데, 문제가 된 곳은 결혼과 성을 언급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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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크란이 해고된 것은 이 책 때문이다. 그는 2013년 출판한 <누가 너를 벗었다 하였느냐>라는 책에서 결혼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지만 동성애를 수간과 소아성애와 같다고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대중을 대상으로 출판한 책에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차별·혐오하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아마존 갈무리) |
그는 자신의 책에서 결혼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 부분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후 동성 결혼과 동성애를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동성애를 수간·소아성애와 같다고 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향해 차별·혐오 발언을 한 것이다.
책의 내용이 계속 문제가 되자 애틀랜타 시장 카심 리드(Kasim Reed)는 코크란 국장을 해고했다. 직접적으로 누구를 차별한 경우는 없지만, 대중을 대상으로 출간한 책에서 차별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개인이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는 있지만, 공무원인 코크란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공직 계약법 위반이라고 했다.
코크란의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들은 애틀랜타 시가 미국 수정헌법 1조에서 보장하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과 발언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남침례신학교 학장 앨버트 몰러(Albert Mohler)는 코크란과 애틀랜타 시의 싸움을 '성(性)적인 자유 vs 종교적인 자유'라고 표현했다. 130만 명의 회원이 있는 조지아 주 침례회도 코크란을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2월 18일, 기독교인 법률가 모임인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ADF)은 코크란을 도와 시 당국과 시장을 고소한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으로 연방 법원에서 그를 변호할 ADF의 변호사들은, 개인의 믿음에 근거해 책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것은 심각한 헌법 위반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코크란의 해고가 종교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과 달리, 어떤 기독교인들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보수 기독교인들이 차별뿐만 아니라 증오와 혐오 발언까지 정당화하며 논점을 흐리고 있다고 했다. 한 기독교 블로거는 코크란이 부하들에게 일부러 책을 나눠 주었으며,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억지로 받아가게 했는데, 이는 애틀랜타 시 반차별 조례도 어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차별을 허용한 주 법령, 종교 자유에 득이 될까
민권법이 제정되고 51년이 지난 2015년 2월 23일, 미국 일리노이(Illinois) 주 의회는 '일리노이 주 법령 101'이라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리노이 주는 물론 미국 전역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법령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주의 지원금을 받는 사립대학교가 사람을 채용할 때 종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예를 들면 주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는 사람을 채용할 때 자격 제한을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법령은 아무리 주의 도움을 받는 기독교 학교라 할지라도, 학교가 믿는 가치에 동의하지 못하는 타 종교인 등은 지원조차 할 수 없도록 제한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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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노이 주 의회는 2월 23일 새로운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 전역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사업자에게 소비자를 차별할 권리를 허락하는 것이다. 사업자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무리의 사람들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법적으로 차별을 허하는 셈이다. (CBS4 뉴스 갈무리) |
이보다 더 논란이 되는 것은 법령의 두 번째 내용이다. 꽃집·웨딩홀·빵집 등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반하는 사람에게는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를 명시해 놨다. 특정 그룹의 사람이라고 쓰여 있지만, 결국 성 소수자 그룹을 향한 것이라고 미국 CBS4 뉴스는 전했다.
이 법령이 의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크리스천신학대학교(Christian Theological Seminary) 매튜 벌튼(Matthew Boulton) 총장은 자유를 위한다면서 새로운 법령을 내놓는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리노이 주에서 통과된 법령은 특정한 그룹의 소수자를 '이등 시민'으로 분류하고 있다며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법령의 통과를 환영하는 교계 목소리도 있다. 같은 주 홀트먼빌리지교회 팀 오버튼(Tim Overton) 목사는 이번 결정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더 강화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가에게 신념과 반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봤다.
차별 막기 위한 법안이 차별의 도구로 사용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거나, 또한 언론과 출판의 자유와 국민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약화시키는 그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 (미국 수정헌법 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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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1791년 수정헌법 1조에 특정 종교와 국가가 결탁하는 것을 막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종교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정착한 사람들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국 기독교계는 이 법안을 차별을 합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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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헌법 1조는 1791년,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제정한 것이다. 1787년 미국 헌법이 제정된 이후, 중앙정부가 주 자치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우려하던 반연방주의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추가한 내용이다. 종교 박해를 피해 자유를 찾아서 온 사람들이 염려하던 것은 특정 종교와 국가가 결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기 위해 수정헌법 1조를 만들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취지가 이 법안에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수정헌법 1조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 적용되고 있다. 종교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만든 법을 또 다른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50년 전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민권법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 기독교계가 이제는 '합법적인 차별'을 적극 옹호·권장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수정헌법 1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