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교회를 다녔지만
정확이 구원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선 유황불에 타지 않고 하늘 나라 가는게
구원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예수님의 재림이
꼭 일어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구원이 뭔지
그저 하나님을 아는 깨달음인지
아니면 뭔지
모호 하게만 느껴집니다.
구원이 뭔지 아시는 분들
쉽고 간단하게 설명 해 주실 수 있는지요....
한평생 교회를 다녔지만
정확이 구원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선 유황불에 타지 않고 하늘 나라 가는게
구원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예수님의 재림이
꼭 일어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구원이 뭔지
그저 하나님을 아는 깨달음인지
아니면 뭔지
모호 하게만 느껴집니다.
구원이 뭔지 아시는 분들
쉽고 간단하게 설명 해 주실 수 있는지요....
구원이
1. 죄의 용서를 일컫는 말입니까?
2. 아니면 하늘 나라 갈 자격을 얻었다는 말입니까? (1 번에 근거한...)
3. 혹은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되는 깨달음입니까?
4. all of the above
5. none of the above
6. 1 & 2
7. nobody knows
저는 3번을 찍겠습니다
마침 준비한 내일 설교의 한 축인데
기독교적 구원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일단 그것의 존재론적인 성격을 파악하는 게 좋을 듯 싶다.
이렇게 질문해보자.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까?
나만 사랑할 줄 알고 남은 사랑할 줄 모르나?
사랑은 우리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 인간을 통치하는 존재 자체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사랑을 소유하거나, 더더구나 독점할 수 없다.
구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그래서 그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길 수 없다.
우리 인간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불러일으키는 생명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그 세계를 향해서 마음을 돌릴 뿐이지 소유하는 게 아니다.
제게는
아내를 만난것이 구원이고 (심한 아부...)
하나님을 만난것이 구원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당시 예수님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이성경절은,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 조로 아스터 교인들, 불교, 이슬람 신자들에겐
구원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김주영님처럼 3번을 고른 다면,
과연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수 있습니까?
우리의 지식은 best guess 에 지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기 시작하는 것이 구원이겠지요.
하나님을 어떻게 다 바로 알겠습니까?
아주쉬운 것을...
어린 아이들도 알수 있는 것을..
많이 배우고 똑똑한 자들에게는 숨겨 졌다는 것이 사실인가??
위에 로산님이 한마디로 말씀 하셨네요.
구원은 해방이라고..
해방 from what? It's still vague.
다들 다른 답안지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네요.
구원은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한데
서로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한교회에 다니고 교리를 만들고 있으니
정말 모순이군요.
이런 다양한 정의를 가지고
누가 구원을 받을 수있는지 이야기 하는건
고무다리 긁는거나 다름이 없는듯....
기독교의 불편한 진실이군요.
snow 님 많이 답답하시죠? 사람마다 답안지의 답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것은 아니고 깨달음의 차이일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깨달은 만큼 있고 가까운 것이고
깨달지 못한 만큼 없는것 같고 멀게만보이지요
구원은 하나님을 아는것에서 출발 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사람의 본질을 알게 되고
사람의 본질을 알아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 답을 알게 되고
그 답을 알고 답대로 사는것
그것이 이땅에서의 구원의 삶이고
영원한 구원 여부는 하나님의 몫이지요
그래서 모든 사람은 구원이라는 프레임안에서
조금빨리가는자와 조금늦게가는자와 출발도 하지 못한자의 차이일뿐.....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선
어느 종교에 있든지 상관 없다는 말도 되는건가요?
하나님을 알기위한 진실한 노력이 있다면...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그게 구원입니다
모든 속박 ==== 육체의 속박 일 수도 있겠네요 ^ ^
육감을 통하여 들고 나는 모든 것이 결국 속박일텐데...
나를 비우면 들고 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겠지요
그런데 비워지지 않으니
내것이라고 자꾸 생각이 드니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 죽을 때 가능한 이야기가 확실합니다.
결국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음을 님의 글에서 느낍니다.
조금 제 생각을 보태면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소원하기 시작하는 것이 구원이라고요
건강하십시요.
어떤 행위로 내가 해방된다는 생각에서의 해방입니다
시간의 초월을 꿈꾸는 늙은이의 독백입니다
무의미가 의미로 바뀔 수 있는 때? 가능성?을 바라는 것
이것이 구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교인이 되고나서는
어떤 행위를 강조하거나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으로 바뀌거든요
거기서부터 자유 해방이어야 할 겁니다
무의미에서 의미로의 변화는
인식의 차이입니다
로산님
댓글을 어만데 단것 같군요.
제가 생각하는 의미와 무의미란
이 답이 없는 험산준령의 인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족할 만한 구원이란
좋은 곳에서 누구와 길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어만데 단 것 아닙니다
님의 생각을 내가 전부 이해 못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내가 읽은 님의 글이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거든요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깨달음입니다
그 깨달음을 우리는 성화라고 부르지요
그러니까 성화=율법을 연상하는 겁니다
좋은 곳에서 누구와 길게 사는 것
그것 구원 맞습니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데
그건 도덕경을 읽는 분들의 수사에 불과합니다
도를 깨달으면 신선이 되는데
신선이 저녁에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끝없는 토론은 지치게 한다나요?
그렇지요?
[좋은 곳에서 누구와 길게 사는 것
그것 구원 맞습니다
인생-> 의미-->깨달음-->성화 -->율법]
훌륭한 로산님의 정의(definition)라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온전한 깨달음은 지금 세상에서는 찾아질 수 없어 보여서
불멸,영생보다는
의미를 알게해 주실 그 사건을 구원이라 보고 싶네요.
그래도 되는지 모르지만요.
"내 눈물, (모두의 눈물) 흘린 의미를 그 때에 알게 되겠네...."찬미 가사처럼
지치는 토론이라기보단
이렇게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데요.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 많이 변했지요?
불멸을 위해 먹는 것 가리고
영생을 위해 눈알도 뽑을 자세로 임했던 우리 선구자들이 이 글 읽는다면
놀라 자빠질 겁니다
어떤 의미에만 구원을 한정 시키는 모습에서
육적 재림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게 변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맞춤구원론을 추구하는 것
하나님께선 뭐라고 하실까요?
바로 그런 얘기가 시작되고 오고가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까지 가르치고 배워 온 구원으로는
스윕스테익이나 피라밋식 구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