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지 않은 일기장
나는 결혼과 동시에 일기 쓰기를 그만 뒀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날 마누라가 내 일기장과 숨겨 둔 사진을 본 것이다
그 날 이후 사진, 일기장 불태우고
그리고 일기쓰기를 그만 뒀다
그것 모두 불태우는데 하룻밤 샜다
옛날이 그리울 때 정말 있다
보고 싶을 때도 있다
물론 권태기 같은 것은 아니다
아련한 세월 너머 5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니
추억만 새록 거릴 뿐이다
그럼 일기장 없다고 내 인생 없는가?
절대로 그것 아니다
살아온 인생 고스란히 하나님 손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거기 적힌 내 인생의 파노라마 중
어떤 부분은 없어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다시 추가되고 없어지고를 반복하다가
내가 죽는 날 그것으로 기록마저 마칠 것이라고 믿는다
맨 뒷장에는 “끝”이란 단어 하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끝이 좋으면
부활이 있을 수 있고
그 끝이 좋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잠을 잔다
아침에 깨어날 때까지 아무 것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죽음도 그럴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안 죽어 봐서 그것 모르지만
그럴 것이라 믿고 있다
내 죽음으로 내 인생 스토리가 없어지니
내게 대한 주님의 용서하심도 대속하심도
그리고 벌할 마음도 끝날 것이다
그날 까지.
하늘은 매일 이렇게 잠드는 사람의 일기장을 마감하고 있다
나처럼 불태우지 않아도 그 일기장은
지금도 주님과 그의 동료들의 손으로 쓰여지고 있고
내가 죽는 동시에 내 미래는 결정되고 말 것이다
내 남은 가족의 고생으로 얻는 연옥도 없고
내가 지은 죄로 인한 직행버스를 타고 갈 지옥도 없다
오직 영원한 잠만 있을 뿐이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말씀 하신 것처럼
모든 것은 끝난다.
그것 끝나기 전까지는 우리끼리는 전쟁할 것이다
이놈 하늘 못 갈 놈
이놈 죽여버리고 싶은 놈 하고 말이다
참으로 질긴 인연의 실타래가 우리를 동여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