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다루는 안교 교과는
갈라디아 4장에 나오는
두 언약 이야기인데
하갈과 사라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바울 스스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얘기는 비유 (알레고리_) 라고 분명히 말했다는 점이다.
그걸 염두에 두고 새겨 들으면
매우 파워풀한 논증이다.
하나는 시내산에서 시작되어
지금 저 예루살렘에 진치고 있는 언약이다.
야고보가 수장으로 있는 교회. 유대화주의자들을 지역교회에 파견해서 감시하던 그 교회 말이다.
시효 지난 것이고 내 쫓아 버려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서부에 사는 목사가
'저 워싱톤 DC ' 를 가리키면서 비난 하는 것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그에 반해 내가 가르치는 복음은
하늘 예루살렘 제품이다.
이것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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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아닌
실제 사건으로서의 이스마엘과 이삭 이야기는
그 있는 자체로 읽어야 한다.
이스마엘을 쫓아낸 아브라함은
참 못된 짓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틴에이저나 된 아들을
그 어미와 함께 쫓아내면서
물 한 동이 곡식 한자루만 주어서 내어 보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아비로서는 본받을 게 하나도 없다.
한 아들은 내어 쫓았고
다른 아들은 죽일뻔 했다.
바로가 무서워서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 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지만
아들을 그렇게 버린 죄는 사실 더 크다.
왜 우리가 그 죄를 문제삼지 않는가 하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바울의 그 알레고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서자는 내 쫓는 것이구나.
첩의 자식은 버려도 되는 거구나.
좋은 씨가 있고 나쁜 씨가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사도 바울에게 따져야겠다.
왜 하필이면 그런 고약한 알레고기를 써서
수천년 동안 교인들 헷갈리게 했느냐고.
왜 차별을 정당화 하는 근거를 주었냐교
그리고 왜 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와 회교가 박터지게 싸우게 하는데
일조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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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했다.
아비에게서 쫓겨나 광야를 방황할 때 야훼께서 거둬 주셨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사망했을 때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장례를 치뤘다.
이스마엘은 열 두 부족의 족장이 되었다. (창 25:16)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와 동일한 레벨의 복이다.
이삭은 생전에 열 둘을 못얻고
그 손자 대에야 열 두 자손을 얻었다.
우리는 조금전에 안교를 마쳤습니다ㅡ우리교회는 설교예배를 먼저합니다ㅡ
그건 비유가 맞습니다 알기쉽게 설명한 겁니다 일종의 우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