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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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6개월간의 일본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 부모님 집에 ‘체크 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트렁크 안에는 물론 선물도 있다. 온 대전을 뒤져서 앞뒤로 일본말이 도배가 돼있는 왜색물건을 낚시질했다. 어른들께 키티 인형을 드릴수도 없고 TOMBO 지우개를 드릴 수도 없으니 선물 장만은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거듭 실감하는 일이지만 완전 범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실용 진리’를 터득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타이완, 멀리 아프리카까지 외제가 범람하는 시대에 Made in Japan을 찾는 일은 지난하기만 했다. 구원은 백화점 지하에서 왔다. 화과자와 메이지 캬라멜 등 먹거리가 선물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이거 말고는 없다. 결국 당뇨약을 복용하시는 부모님께 달콤한 화과자와 예쁜 캔디박스를 선물해야 했다. 이동시 당 떨어질 때 비상 구급약으로 쓰시라는 친절한 사용설명과 함께.
얼마나 지났을까. ‘쟤가 뭐하고 있나’ 쇼윈도의 마네킹 쳐다보듯 보는 듯 마는 듯 예의주시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긴장이 고조된 나날이 계속되었다. 부모님은 곧 출근을 하게 될거라 믿고 계시고, 나는 ‘반대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탕과자가 바닥날 즈음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하지만 무작정 실토를 할 수는 없었다. 이번은 초 민감한 사안으로 섬세한 주의와 기술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말에 진정성을 담아 전달해줄 수 있는 매체가 필요했다.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불교는 사탄이 아니다’를 증명하기 위한 ‘객관적’ 증빙자료 취합이었다.
우선 선불교가 무엇인지, 해외에서 크게 인정받고 계신 숭산 대선사가 어떤 분이며, 어떤 가르침을 펼치셨는지, 그분 때문에 김치 없이는 못살게 된 ‘모태 크리스천’ 현각 스님 스토리와 대박을 친 저서 상하권, 국제선원에 모이는 사람들에 대한 현황 보고서 등을 모았다. 꽁꽁 뭉쳐있을 선입견과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낱장 자료는 A4 클리어 파일에 초중급 ‘순차적 레벨별’로 끼워 넣고, 틱낫한 스님의『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등 이해를 도울만한 관련 도서들도 구했다. 작게는 어른들의 혈압상승, 크게는 심장마비를 방지 할 주요 소프트랜딩 장치였다.
‘주여, 우리 엄마 아빠의 마음을 열어주소서.
놀라지 않게 하시고, 실망치 않게 하소서.
끝까지 저를 믿고 오히려 저의 간절한 소망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더욱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사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제발, 플리즈~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날은 엄마가 즐겨보시는 드라마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늦게까지 거실을 지켰다. 다행히 드라마는 긴장구조가 아닌 애틋한 감응을 남기는 착한 앤딩으로 마감했다. ‘테레비도 나를 돕는구나’ 전파 덕분에 거실 분위기도 말랑말랑해졌다. 아버지는 주무시기 위해 먼저 안방으로 드신 후였고 소파에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엄마와 내가 모처럼 나란히 앉아 있었다.
TV가 제 할일을 다했으니 우린 더 이상 벽을 쳐다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드디어 내가 출연할 시간이다. 두근 반, 세근 반 좌심방 우심방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심장이 이렇게 실체적으로 느껴지긴 처음이다. 몸속이 심장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럴땐 단전호흡이 최고다. 참선을 하게 된 후로는 심호흡 할 일도 자주 생긴다.
“엄마...”
“응.”
“피곤하지?”
“아니 괜찮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그래.”
“(우르르쾅, 콩닥쿵닥, 휴~~)”
“엄마도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요즘 관심 갖고 있는 곳이 있어요.”
“그래.”
(요이~ 땅!)
“재작년 귀국한 후에 선(禪)불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무 말씀이 없으신채 묵묵히 듣고 계신다.
“엄마한테는 일일이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하는 신앙 모습에도 회의가 일었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믿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고민이 있었어요. 한동안 마음으로 방황을 하다가 그러던 중에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구요.”
오강남 선생님의 <예수는 없다>와 <수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시간이다. 조심스럽게 두 권을 전달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 책은 우리가 잘 믿는다고 하면서 저지르고 있는 오류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었어요.”
잠시 숨 쉬는 시간.
“그러면서 한국에 선불교라는 것이 있고, 참선이라는 일종의 Q.T(경건의 시간)를 통해 깊은 내면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접하게 되었구요. 제방에 있는 책들은 그와 관련된 것들이었어요.”
“예수는 없다? 이게 무슨 말이니?”
“아니 예수님을 부정하는게 아니구요. 우리가 잘 못 알고, 잘 못 믿고 있는 그런 예수는 없다 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요. 이 책을 쓰신 분도 기독교 신자세요. 캐나다 리자이나대학에서 오랫동안 비교종교학을 연구하시고 강의하는 저명한 학잡니다. 서울대 출신이세요.”
“그래 이 책을 보고 네가 그렇게 됐다고?”
“네, 제가 갖고 있던 막연한 의문이랑 무의식을 알게 해 주었어요. 꼭 사막 한중간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위도와 경도로 내가 있는 위치를 알게 해주고 나침반으로 어디로 향해 가야할지 가르쳐주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뒤적뒤적 책장을 넘기시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내말을 경청해 주셨다.
“엄마, 그래서 참선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불교는 아주 훌륭한 가르침이더라구요. 우상이나 마귀 사탄이 아니라 바른 사람이 되게 하는 유서 깊은 철학이자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아울러 이해하게 하는 체계적인 과학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요즘은 서구 지식층에서 동양의 선불교 사상에 매우 주목하고 있어요.”
이 부분에서는 전달할게 많았다.
나도 처음 알게 된 숭산 스님의 해외 가르침과 수많은 외국인 제자들 스토리며 현각 스님까지 다큐로 엮어 생방을 이어갔다.
“그래서 절에 가 있었던거니?”
(!!!!!)
‘오 마이 쥐저스~!’
엄마의 심장마비를 걱정했는데, 내 심장이 멈췄다.
“네???”
“너 그 동안 절에 있다 온 거 아니야?”
“엄 마...............”
말을 잃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걸 왜 모르니. 네 얼굴에 다 써있는데. 네가 뭘 원하는지.”
엄마는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시고는 이마에서부터 턱 밑에까지 쪼르륵 밑줄을 그으며 말씀하셨다.
“엄마는 그냥 읽기만 하면 돼.”
“엄마아~~~~~”
순간 이런 엄마에게 합장을 해야 할지 절을 올려야할지 무릎을 꿇어야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미 몸은 소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엄마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엄마가 이때처럼 커 보인적은 없었다. 무한한 존경심이 솟구쳐 오르고 왈칵 눈물이 났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신 게 아니었다. 집안에서 가장 가까이서 나를 묵묵히 지켜보시고 나를 기다려 주셨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엄마는 침침한 눈을 부벼 가시며 내가 건넨 자료와 책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으시고 읽으셨다. 가끔은 끄덕끄덕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셨고, 어떤 곳은 밑줄을 치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는 접어놓고 나중에 내게 묻기도 하셨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꼼꼼이 물어봐 주셨다. 엄마의 이런 노력이 내겐 그대로 감동이고, 감격이었다. 수행 덕분에 나는 엄마를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맘먹고 시작한 공부 조금 더 해보고 싶다는 요청도 순순히 허락해 주셨다. 그해 겨울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했던 동안거는 엄마로부터 ‘장학금’까지 희사 받았다.
“네가 그토록 해보고 싶은 공부라니 이번에는 엄마가 학비 주마.”
“네?”
“비용이 얼마나 드는 거니? 먹는 건 제대로 나오는 거고?
동경에서 공부할 때는 엄마아빠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꼭
엄마가 해주고 싶구나.“
이런 엄마 딸로 태어난게 자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4대 일간지, 아니 대표로 ㅈ신문은 뺀다. 한겨레,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딴지일보, 해외토픽으로 아사히, 마이니찌 신문에도 올리고 싶었다. 그때 못한 아쉬움을 지금 자판을 두드리며 원 없이 풀고 있다. 책 쓰기를 잘 했다. 이렇게 멋진 부모님을 둔 나는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성 자, 유 자, 영 자.
정 자, 길 자, 순 자.
나는 이분들께 마음으로 삼천 배를 올렸다.
“엄마, 그리고 아빠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을 지켜주십시오.”
"예수는 있다" 를 통한 커밍아웃에 관한 글도 기대를 해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