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러분들의 글들을 읽고 느낀 점입니다.
1. 조사심판
2. 1844
3. 2300 주야
4. 다니엘과 계시록의 예언해석과 종말론
a) "이 토픽들을 교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예수가 빠져있고
예수가 빠진 교리들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여기 까진 저도 동의함) 위에 교리들은 필요가 없다.
예수가 빠진 쓸데없는 교리에 목매이지 말자"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과,
b) 또 "성경에 나왔으니(본인들 해석에 의하면)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또 화잇이 우리 교단의 기둥이라 할정도로 중요한 진리들이니
당연히 우리 교단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 교리들이다" 라고 생각 하는 분들의
discussion 이 있었습니다. 저도 끼어들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눈팅만 계속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a) 도 아니고, b) 도 아닌 제 3의 솔루션 (a third alternative)도 고려해 볼수 있지않을까" 입니다.
당연히 예수와 그의 사랑이 빠진 교리는 별가치가 없습니다. 특히나, 주님의 사랑은 나타내기는 커녕, "협박"용으로
사용되는 종말론은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과는 일치할수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는 교리상 "조사심판" 이 잘못됬다고 "조사심판" 자체를 부인 하거나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은
좀 성급한 면이 없지 않나 하는 느낌이듭니다.
예를 들면, 바리새인 들은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믿었지만, 그 안에 있는 예수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경 자체를 거부하진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해한 "그런" 성경을 거부하는 것이지...
그 안에서 예수가 있는 성경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빈배님도 "예수는 없다" 를 쓰셨지만, 좀더 정확하게 표현을 하면 "그런" 예수는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까?
조사심판도 "그런 조사 심판은 없다" 일수 있지않겠습니까?
만약에 말입니다, 조사심판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중심이라면...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중심에 있다면, 그런 조사심판은 복음을 더깊이 이해하는 발판이 될수있을 껍니다.
만약 그렇다면, 조사심판은 우리교단이 기독교에 보태는 큰 선물이 될수도 있을껍니다.
조사심판 뿐만아니라, 종말론 도 그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가 있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더욱더 확실하게 다지는 역활을 한다면,
그런 종말론은 복음을 더 확고하게 할수있겠지요.
제 생각에는 진정한 조사심판과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영원한 복음이라고 생각됩니다.
본론은 없고 서론만 길어서 죄송합니다. 시간은 안되고, 마음만 급해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third alternative 를 차근 차근 글로 올리겠습니다. 신학적인 essay 가 아니라,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조사심판의 여러면 들을 살펴본다음, 다시 총정리하는 글을 올릴까 합니다.
예수님이 있고 없고의 문제도 아니고
심판의 본질이나 성격의 문제도 아니고
하늘에 성소가 있느냐 없느냐도 아니고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 모든 것이 단 8:14을 잘못 해석해서 나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산골님에게도 말씀드렸지만
조사심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1844가 나온 것이 아니고
1844가 있었기 때문에 조사심판이 생겨난 것입니다.
1844 대실망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 1844 라는 것은
잘못된 성경읽기 때문에 생겨난 날짜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심판에 관해 많은 좋은 신학과
복음적인 심판 이야기들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늘 성소의 이미지 찾을 수 있습니다.
심판과 종말론을 복음적으로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단 8:14에 대한 근본적인 잘못 읽기로 인해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원천 무효(?) 라는 뜻이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조사심판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1844년이 있는 것이 아니라
1844년이 있었기 때문에 조사심판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리고 그 1844 는 성경을 잘못 읽어서 생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