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소제라는 예식
레위기 서를 읽으면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종류가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속죄제 속건제에 대하여는 이야기하면서
소제에 대하여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사의 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현현이 눈에 잘 안 보이기 때문인데
그러나 레위기서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양이 아니라도 비둘기나 반구를 준비하라하십니다
소제는 대여섯 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의심의 소제입니다
민 5:15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 소제는 남편의 의처증이나 동네가 쉬쉬하는 부인의 부정을 가려내는 법입니다
제사장은 그 여인에게 토기에 담긴 거룩한 물에 티끌을 넣고
머리를 풀게 하고 생각하게 하여 명세하게 하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물”이란 단어에서 거룩한 물이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시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닌
저주의 명세를 하게하고 거기에 걸리면 배가 부어오르고
넓적다리가 썩어 떨어지는
일종의 주술적인 방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가서도
이런 방법으로 부정한 여인을 골라냈을까요?
난 이 구절을 읽으면서 꼭 그 당시 주위 나라들이 행하던 그 주술 같은 일을
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 5:27
“그 물을 마시운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지리니 그 여인이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요즘은 유전자 조사까지 벌리는 시대입니다
요즘은 증거 없이는 재판도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것보다 요즘은 간통죄를 없애려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진다는 말을 이해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그런 것 떠나서 그 시대에는
어린 양을 드릴 필요가 없는 행위입니다
피 없는 제사와 피 있는 제사에 부속되는 소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소제로서 받으십니다.
소제는 유일하게 희생동물이 아닌 곡물로 드리는 것으로
제사의 세부 규례들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몇 가지의 원칙을 세우셨습니다.
또 다른 소제는
곡물은 알갱이 채로 드리지 말고
우선 고운 가루를 만들기 위해서 채로 치라고 하십니다
모든 소제 물에 반드시 기름을 붓고 소금을 치되,
누룩을 섞지 말아야 하고
무교전병 또는 구운 과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소제 물은 제단의 불에 살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에 드리는 제사인데
왜 이토록 까다롭고 많은 원칙을 세우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헌신에 대한 확정을 얻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우리가 헌신을 말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채로 친 고운 가루처럼 형체를 남기지 않는 자기부인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묵상 중에 주신 깨달음들을 순서대로 나누자면
손으로 만져서 머뭇거리는 잔 것들이 없는 글자그대로 고운 가루어야 합니다
형식과 이름은 주를 위함이라고 하면서
나는 칼 차고 이름표 붙이고 성전 뜰을 거들먹거리면서 다니지 않았는지
사람들의 인정과 영광을 가로채면서 주를 위함이라고 포장하지 않았는지
더 이상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치욕 넘치는 헌신은 아니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헌신은
내가 생각하고 만들어낸 섬김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그 안에서의 인 치심,
곧 약속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헌신이어야 합니다.
“주여.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완장차고 주의 이름으로 칼을 차고
주의 이름으로 화형대도 만들었습니다.
주께서는 그것을 당신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한 것이라고
그러나 그를 모른다고 하셨는데
주께서 기뻐 받으시는 헌신은
사람 편에서의 볼 때에 대단한 열심과 눈물 나는 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소제는 누룩을 섞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순결과 주를 아는 헌신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섞인 누룩처럼 인간의 탐욕과 저주의 주술과
다른 반대급부를 얻기 위한 눈속임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단의 불로 사러집니다
모든 소제물은 불로 사러져서 형체도 없이
번제의 제사로 변형됩니다.
다시 말하면 희생의 피가 없는 소제라고 해도
사러지는 헌신은 희생의 피와 같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본질적으로 죄의 생명을 가진 인간이
십자가의 보혈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확실한 가치를 발견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소제를 주셨습니다
규례들을 통하여 하늘의 이치를 설명하시는 분
속죄제의 한 가운데 서 계신 그분
가장 완전한 소제, 곧 자신을 고운가루로 드려 생명의 떡을 삼아
제자들에게 떼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고운 가루로 탄생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소제는
분명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항상 제시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종류별로 볼 때
이 모두 오늘날의 형편을 비교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남자의 부정을 가려내는 제사, 제도는 없었습니다.
어둡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